복사꽃 외딴집
복사꽃 외딴집

권정생 | 그림 김종숙 | 단비
(2022/05/10)


권정생 선생님의 단편 동화 “복사꽃 외딴집”은 1973년 ‘새생명’ 5월호에 실렸던 작품입니다. 2017년에 “멍쇠네 부엌솥”(1975), “돌다리”(1989), “우리들의 고향”(1991) 등과 함께 엮어 “복사꽃 외딴집”이란 제목의 동화집으로 출간되었지요. 표제작이었던 “복사꽃 외딴집”의 여운이 많이 남았었는데 반갑게도 올해 단비출판사에서 김종숙 작가의 아름다운 그림옷을 입혀 그림책으로 출간했습니다.

복사꽃 외딴집

복사꽃 외딴집

복사꽃 외딴집

산골마을 외딴집에 단둘이 살고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야기입니다. 마을에서 떨어진 외딴집에 움막을 짓고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좋아했고 강아지랑 참새, 벌레, 꽃을 사랑하는 맘씨 좋은 분들이었어요.

어느 가을 하교하던 꼬맹이들이 할머니네 감나무에 탐스럽게 열린 감을 보고 눈독을 들입니다. 마침 두 분 모두 밭에 나가고 없어 빈집이란 걸 눈치챈 아이들은 욕심껏 감을 따 달아났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다 알고 있었지만 모른 채 눈감아주었어요. 오히려 아이들이 나무에서 떨어질까 걱정되어 감나무 옆에 장대까지 세워두고 패나무에 안내 문구까지 써두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무나 따 먹어도 좋음.
다만 한 사람이 한 번에 꼭 한 개씩만 딸 것.

할머니 할아버지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아이가 아닌 어른이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렇게 할머니와 할아버지, 꼬맹이들은 친구가 되었어요. 추운 겨울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외딴집에 들러 몸을 녹이고 가기도 하고 할머니가 건네주신 고구마도 얻어먹고 감자떡도 먹고 옥수수도 먹고. 성적을 잘 받은 친구는 할아버지네 개 몽실이가 낳은 강아지를 선물로 받기도 했어요.

아이들도 쉬어가고 지나가던 길손도 잠시 쉬어가는 외딴집. 한 번은 비를 피해 들어왔던 새댁이 외딴집에서 아기를 낳기도 했어요. 할머니의 정성스러운 산바라지 덕분에 무사히 산후조리를 마치고 돌아간 새댁은 할머니에게 선물을 보내며 꼭 한 번 자신이 사는 바닷가 마을로 놀러 오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지요.

외딴집에 할머니 혼자 남게 된 건 어느 늦가을 할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부터였어요. 한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할머니는 어느 봄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고 홀로 길을 떠났어요. 할머니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어요. 다만 복사꽃 필 무렵이면 다들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릴 뿐이었지요. 꽃처럼 피어나는 기억들, 그 기억은 사랑으로 새겨진 그리움이란 자국일 거예요.

이 이야기는 권정생 선생님이 1965년 상주에서 걸인으로 생활하며 떠돌 무렵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노부부를 기억하며 쓴 동화라고 합니다. 권정생 선생님 나이 스물여덟 살 때의 일이었지요. 1969년 동화 강아지똥이 발표되기 4년 전의 일이구요. 어려운 형편에도 온기를 나누고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잘 녹아있는 작품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아름답게 그려낸 권정생 선생님의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건 거침없이 그려낸 김종숙 작가의 그림입니다. 묵직하면서도 화사하고 아름답게, 한껏 유쾌하면서도 짜르르 그리움이 뼛속까지 사무치게 밀려오도록 그린, 춤추듯 연주하듯 혼을 실어 그린 그림들… 넘기고 넘기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넘기고 수십 번을 되풀이하며 김종숙 작가의 그림을 감상해 보았습니다. 그림으로 건네는 위로가 따뜻합니다.

태식이, 용갑이, 진복이, 정수, 돌이 그 정겨운 이름을 부르며 “복사꽃 외딴집” 그림책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 봅니다. 한때 외딴집 가득했던 사랑의 향기를 느껴봅니다. 진짜 어른이 그리운 시절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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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
조선민
2022/07/01 23:01

가슴따듯한 이야기네요 참어른의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아름다운 수채화같습니다 중년이 되어버린 지금의 내모습도 반성하게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가온빛지기
Admin
2022/07/07 12:36
답글 to  조선민

조선민님 반갑습니다!
언제 읽어도 따뜻한 권정생 선생님의 이야기와 김종숙 작가의 투박한듯 하면서도 푸근한 그림이 참 잘 어우러진 그림책입니다.
진짜 어른으로 살아가기 쉽지 않은 시절이지만 그래서 더 어른답도록 중심 잘 잡고 살아가야겠습니다.

가이니
가이니
2022/07/09 14:28

노년에 받은 따뜻한 선물이네요. 바로 나의 부모님 나의 유년의 이야기거든요. 지금은 떠나고 안 계시고 그때 그 복사꽃 자리엔 우리밀 과자 공장이 들어서 그리움의 공간이 사라졌기에 안타까웠는데 다시 돌려받고 한참을 울먹였네요. 항상 좋은 작품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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