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돌아와, 라일라

너만을 위한 정류장,
길과 버스,
집과 문도.

‘길을 가다 보면 에어 매트를 만날 수도 있어.’라는 엉뚱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돌아와, 라일라”. 에어 매트? 길을 가다? 왜? 이런 생각을 중얼거리며 책을 한 장 더 넘기면 호수가 나타나고 라일라는 길에서 만난 에어 매트를 타고 호수를 건넙니다. 아…

호수를 건넌 라일라는 계속 걷습니다. 오솔길을 걷다 산딸기 요구르트를 만나기도 하고 산, 모닥불, 풍경, 우산, 낭떠러지, 다리들도 만납니다. 그 길의 끝에서 라일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라일라만을 위한 정류장. 그곳에 도착한 버스도, 그 버스가 달리는 길도, 그 길이 향하는 곳도 모두 라일라만을 위한 것입니다.

물론, 방금 전까지 걷던 길에서 만났던 것들과 같거나 비슷하거나 혹은 전혀 새로운 것들이 또 라일라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어느 길을 가고, 어느 것을 선택하고, 누구를 만날 것인지 선택은 고스란히 라일라의 몫입니다.

라일라가 길에서 만났던 것들이 어쩌면 저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들 각각이 갖는 의미는 서로 다를 겁니다. 의미가 다르니 마주했을 때 우리의 선택과 행동 역시 저마다 다를 테구요. 그 선택과 행동으로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길을 걷게 되겠죠.

이야기 둘,

돌아와, 라일라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할게.
네가 돌아만 온다면.

“돌아와, 라일라”는 그림은 라일라의 여정을 보여주고 글은 라일라를 응원하는 가족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가족’으로 보았지만 그림책을 보는 사람들마다 응원의 목소리의 주체는 다르게 다가올 겁니다. 친구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소중한 누군가일 수도 있겠죠.

이 그림책의 마지막 두 장면은 굴곡진 삶에 지쳐서 잠시 쉼이 필요한 이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얼싸안아주는 듯 합니다. 이제 막 돌아와 집 앞에 선 라일라, 길 건너 집이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까이 보입니다. 창문에 비친 파란 모자, 반쯤 열린 문으로 새어나오는 낯익은 목소리들.

다음 장에서 라일라를 기다리는 집 안 풍경이 이어집니다. 방금 전 창문 너머로 보였던 파란 모자의 주인이 길 건너에 선 라일라를 보며 정답게 웃고 있습니다. 문을 열고 선 친구의 얼굴에 ‘아, 무사히 도착했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이 차오릅니다. 식사를 준비하는 이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피어납니다.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참 든든한 일입니다. 늘 나를 기다려주고 내가 가는 길을 아무 조건 없이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더더욱 힘이 나는 일이구요.

에바 린드스트룀은 단 열두 장의 그림과 열 줄도 채 되지 않는 글로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너만의 삶을 살아가라고, 때로는 너의 선택이 힘들고 아픈 결과를 가져올지라도 오롯이 너의 선택으로 살아가라고, 힘들고 지칠 때는 돌아와서 잠시 쉬어가도 된다고,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기운 차렸으면 다시 너의 길을 가라고.


돌아와, 라일라

돌아와, 라일라

(원제: Kom hem Laila)
글/그림 에바 린드스트룀 | 옮김 이유진 | 단추
(2022/06/14)

“돌아와, 라일라”는 삶의 여정에서 느끼는 외로움, 본향을 향한 원초적인 그리움, 삶에 지쳐 위로 받고 싶은 마음, 힘겨워하는 내 소중한 누군가를 보듬어 주고 싶은 애틋한 마음, 인생이 막다른 길에 부딪혔을 때 문득 떠오르는 어린 시절 철없이 행복했던 어느 날을 향한 그리움… 우리 삶에 담긴 그런 외로움과 그리움에 대한 그림책입니다.

에바 린드스트룀은 배경에 비해 라일라나 사물들을 아주 조그맣게 그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아주 작은 존재임을, 우리를 힘들게 하는 고민 거리들 역시 먼지처럼 아주 작은 것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물론, 아주 작은 점에서 이 우주가 탄생한 것처럼 작디작은 우리들의 발걸음에서 놀라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메시지도 함께 담아서 말이죠.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0 0 votes
Article Rating
알림
알림 설정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모든 댓글 보기
0
이 글 어땠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