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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 방 안에서

눈 내리는 날 방 안에서

(원제: Matin Minet – À L’INTÉRIEUR)
글/그림 안 에르보 | 옮김 이경혜 | 한울림어린이
(2023/01/12)


“눈 내리는 날 방 안에서” 두 주인공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창밖에 내리는 눈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따뜻하고 다정하게 느껴집니다. 내리는 눈을 보고 있자니 유리 슐레비츠의 “눈이 내리면” 표지 그림이 겹쳐서 생각났는데요. ‘눈’이라는 공통점으로 이어진 두 권의 그림책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정답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거리를 좁혀주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여서 든든해지는 마음 같아요. 그래서 이 책을 혼자 읽기보다 같이 읽고 나누고, 덤으로 “눈이 내리면”까지 읽으면 만찬을 즐긴 듯 배부른 독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숲속 나무의 우듬지에 사는 고양이 냥이와 바구미 쌀톨이는 눈이 한없이 내리는 여러 날을 방 안에서 보내고 있어요. 근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거예요. ‘왜 밖에 나가지 않지?’하고요. 눈이 내리면 보통 밖에 나가서 놀 궁리를 하지 않나요? 고양이는 털 동물 이기는 하나 추위에 약하고, 바구미는 낟알 속에서 겨울나기를 하는데 기온이 13℃ 이상이 되어야 활동이 활발해진다고 해요. 이 친구들에게 겨울은 춥고 움츠리게 하는 칩거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눈 내리는 날 방 안에서

눈 내리는 날 방 안에서

냥이는 집안을 정리하고 창밖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내고 쌀톨이는 책에 빠져 있어요. 일주일 동안 둘은 같은 공간에서 다르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아빠는 스마트폰으로 ‘일렉시드’ 웹툰을 보고, 엄마는 책을 읽고, 아이는 자동차와 레고 놀이 삼매경에 빠져 있던 모습입니다.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지만 관심사가 달라서 결속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게 마련이지요. 냥이는 쌀톨이를 바라보며 차 한 잔을 건네려 하고, 쌀톨이는 창밖을 내다보며 “새들한테 모이를 줘야겠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그 순간을 극대화한 것 같습니다.

눈 내리는 날 방 안에서

눈 내리는 날 방 안에서

반면 거리가 생기고 눈 마주침이 사라진 여백의 공간에 무엇인가를 채우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눈이 계속 내리고, 안에서 생활이 지루해진 냥이는 심심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때 쌀톨이가 시를 낭송해 줍니다.

맑은 밤이여. 나는 여섯 개의 꿈을 꾸었네.
일곱 번째 꿈은 이루어지리니,
바람과 새들과 더불어.

쌀톨이가 시를 낭송할 때 그 위로 눈송이들이 하나 둘 연결되어 별자리가 만들어져 있어요. 시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우리가 서로에게 시선을 돌리고 호기심을 갖는 순간으로 생각되어 온몸이 전율했습니다. 무엇이든 의미가 되고 용서가 될 것 같았어요. 그 후 냥이는 이야기에 빠져들고 쌀톨이와 책을 나누어 읽으며 시간을 공유합니다. 멋진 모습 아닌가요? 냥이와 쌀톨이가 각자의 시간을 보냈기에 둘이 같이 책에 몰입 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혼자의 시간은 함께 하는 시간을 위해 준비하는 충만한 시간이라는 것을요.

제가 책을 읽고 있을 때 놀이가 지루해진 아이는 다가와 말을 겁니다.

“엄마 어떤 책 읽어요?”
“엄마는 ‘안나 카레니나 2’ 읽고 있어.”
“안나? 안나 클라라 티돌름?”

그러더니 어려서 읽던 “두드려 보아요!”(안나 클라라 티돌름 / 사계절 / 2003)를 가져와 읽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아이와 이어져 있는 것이 책과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책을 읽히려고만 했지 우리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나 마음은 알아채지 못했거든요. “눈내리는 날 방안에서”의 냥이와 쌀톨이는 책과 이야기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마음과 마음을 교류하고 이어주는 것이 참다운 인간의 언어입니다. 이런 언어 체험을 촉구하기 위해 그림책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어린이와 그림책”(마쓰이 다다시 / 샘터사 / 2003) 중에서

냥이와 쌀톨이는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바꿔 읽기도 하며 함께 했습니다. 이야기는 언어입니다. 마음을 교류하고 이어주는 것이 참다운 언어라는 통찰은 책을 읽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마음에 가닿고 울림을 주었던 것입니다. 책에 관심이 없던 냥이가 쌀톨이처럼 읽기에 푹 빠질 수 있었던 것 처럼요. “눈이 내리는 날 방안에서”를 통해 함께 책을 읽는 경험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 아침냥 이야기 시리즈

오늘 소개한 “눈 내리는 날 방 안에서”는 2021년에 출간된 “꼭두새벽을 보았니?”“조약돌 주우러 갈까?”에 이은 아침냥(Matin Minet) 이야기 시리즈의 세 번째 그림책입니다. 안 에르보는 2019년에 “Le Point du jour”(꼭두새벽을 보았니?)를 시작으로 매년 한 권씩 이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데요. 덕분에 연말이면 냥이와 쌀톨이 이야기를 기다리는 팬들이 제법 된다고 합니다. 2022년 10월에 출간한 “Smimna”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글판이 출간되어 있습니다.

유유리딩

첫 읽기의 시작은 엄마가 사준 "소공녀"라고 믿고 있어요. 무미건조한 회사원의 삶을 살다 엄마라는 혁명에 참여했습니다. 그림을 감상할 때 자유로움을 느껴요. 읽기 공동체, 문턱이 낮은 숲의 도서관을 소망하며 사서를 준비하고 있어요. 평생 책과 사람을 통해 읽고 쓰고 배우는 삶을 위해, 몸 하나 남는 정신적 해방을 맞는 순간을 위해, 문장들에 기대어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인터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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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John
2023/02/24 11:17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좋은 서평 부탁드립니다~^^

고영경
고영경
2023/02/25 11:42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가슴이 따뜻해 집니다. 우리 내면으로 향하는 시선은 나를 견고하게 하고, 외부로 향하는 시선은 세계를 연결 시키고 닮아가게 하네요. 서평 감사합니다.

행복한 삶
행복한 삶
2023/03/02 20:20

책으로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게 마음이 와닿습니다. 좋은 내용 감사드립니다.
저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서 책
2023/03/03 08:25

좋은 이야기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닌 해를 기다리며
노을을 지켜봐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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