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뜰에서할머니의 뜰에서

(원제: My Baba’s Garden)
그림 시드니 스미스 | 글 조던 스콧 | 옮김 김지은 | 책읽는곰
(2023/03/23)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가 나의 인생 그림책이라고 말하는 분들이라면 시드니 스미스와 조던 스콧의 신작 “할머니의 뜰에서”가 더없이 반가우실 거예요. 전작과 마찬가지로 조던 스콧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이 그림책은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을 따스하고 뭉클한 시선으로 보여줍니다. 조던 스콧이 글로 세상을 그리는 시인이라면 시드니 스미스는 그림으로 세상을 읽는 시인입니다.

할머니의 뜰에서

아침마다 아빠는 아이를 고속도로 옆 작은 오두막에 사는 할머니 댁에 데려다줍니다. 할머니가 나와보지 않아도 아이는 할머니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요. 좁은 부엌을 춤추듯 오가며 손주를 위한 아침을 준비하던 할머니는 수영장 만한 그릇에 오트밀을 가득 담아 내어주셨어요. 어쩌다 아이가 음식을 흘리면 할머니는 떨어진 음식에 입을 맞추고는 다시 그릇에 도로 넣어 주셨어요. 먹을 것이 부족한 힘든 시절을 살아온 할머니만의 삶의 방식이라는 걸 아이는 엄마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아침을 다 먹고 나면 할머니 손을 잡고 학교까지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두 사람의 일상이었습니다.

붉은색 커튼 뒤 작은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 그곳에서 분주하게 아침을 준비하는 할머니를 묘사한 장면은 마음 한 곳에 그림처럼 자리 잡은 기억을 소환하며 독자를 그 장소로, 그날의 기억으로 자연스럽게 인도합니다.

할머니의 뜰에서

비 오는 날이면 학교까지 천천히 걸어가면서 할머니는 빗물에 떠다니는 지렁이를 유리병에 담았어요. 할머니는 지렁이를 토마토, 오이, 사과나무가 자라는 텃밭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흙으로 잘 덮어 주셨어요.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러자 바바는 빗물에 젖은 손가락으로 내 손바닥의 손금을 가만히 만졌어요.

어떤 손짓은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품고 있죠. 할머니가 어루만지는 그 손의 촉감이, 그리고 그 의미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짙푸른 녹음 속 노란색 비옷, 빛나는 하얀 선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하찮은 생명조차 소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마음이 할머니에게서 손주에게 전해지는 순간을 하나의 경건한 의식처럼 보여주고 있습니다. 눈빛, 손짓, 웃음 그리고 마음…  함께 있는 동안 두 사람은 마음과 마음을 나누며 더없이 다정하고 소중한 시간을 보냈어요.

할머니의 오두막이 있던 자리에 커다란 빌딩이 들어서고 더 이상 걷기조차 힘들어진 노쇠한 할머니는 이제 아이와 한 집에 살게 되었어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놓인 할머니에게 아이는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을 펼쳐놓습니다. 할머니가 아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뜰은 사라지고 없지만 할머니의 뜰은 아이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거예요. 지렁이가 흙을 먹고 흙을 더 기름지게 만드는 것처럼 할머니의 사랑은 더 크고 묵직한 사랑이 되어 세대를 이어가겠지요.

어떤 기억들은 마음속에 그림처럼 박혀있다 기쁠 때뿐만 아니라 슬플 때, 힘들 때도 문득문득 떠오르곤 하죠. 울림 가득한 조던 스콧의 아름다운 글과 시드니 스미스의 정감 어린 포근한 그림들이 그런 기억들을 소환합니다. 아지랑이처럼 가슴에 녹아있는 기쁘고 아련한 기억들을.

잊지 못할 사랑의 기억을 품고 있는 아련한 햇살 같은 그림책 “할머니의 뜰에서”, 우리의 지나간 시간들, 수많은 이야기들은 어디로 흘러갈까요? 각자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불씨로 남아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건네주는 것 아닐까요? 삶이 그대로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멋진 이야기는 우리 삶으로부터 빚어집니다. 다정한 기억은 마음의 뜰 안에 스며 우리와 함께 살아갑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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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책
서 책
2023/04/28 09:44

‘그림으로 세상을 읽는 시인’
그림이 참 곱습니다. 이 책도 애독하고 싶어지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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