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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아빠

나의 작은 아빠

(원제: Mon Petit Papa)
그림 장 줄리앙 | 글 다비드 칼리 | 옮김 윤경희 | 봄볕
(2023/04/03)


제게 어릴 적 아빠는 세상 무엇보다 큰 사람이었어요. 집으로 가는 귀갓길이 늦어질 때면 오토바이를 운전해 어린 저를 태워주곤 하셨습니다. 아빠의 넓은 등에 기대어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잠들곤 했는데요. 바람이 따뜻하게 느껴진 건 아빠로부터 전해지는 온기 덕분이었습니다.

나의 작은 아빠

아빠가 어린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그림에서 그런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두 사람이 지나온 시간은 어땠을까? 맞잡은 두 손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어린 아들 곁에서 다정하게 책도 읽어주던, 아이가 원하는 거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고 해내던 든든한 아빠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나의 작은 아빠

시간이 흘러 아들은 아빠와의 어깨동무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자랐습니다. 두 사람이 웃으며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장면이 사랑스럽고 사이좋게 그려져 있습니다. 짙어진 아들의 수염과 굽어진 아빠의 등은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줍니다. “이제 나보다 더 커졌구나!”라고 말하는 아빠는 자신이 나이 들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제는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많아지고 아들에게 의지해야 할 상황이 찾아온 것입니다.

나의 작은 아빠

아빠의 미소는 의도치 않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살아내는 방법밖에 없음을 아는 듯합니다. 아들도 마찬가지로 아빠에게 찾아온 변화를 받아들입니다. 자신이 아빠에게 받았던 돌봄의 손길과 사랑을 고스란히 전합니다. 아빠와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읽어주고, 화창한 날에는 햇볕도 쬐러 나갑니다.

나의 작은 아빠

하지만 신기하게도,
미소를 짓고 있어요.
언제나.

늙는다는 것은 삶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책에서는 그런 혼란을 미소 뒤에 흐릿하게 가두어 삶을 긍정적이고 밝은 쪽으로 옮겨 가게 도와줍니다. 바로 삶에 순응하며 살아온 아빠의 미소입니다. 어린 아들에게 언제나 든든했던 아빠는 더 이상 아니지만 나이 든 아들은 여전히 아빠의 미소에 기대어 지금을 살아갑니다.

화사한 연두색 배경의 책표지엔 아빠와 아들이 산책중입니다. 아빠를 목마 태운 채 미소를 머금고 있는 아들, 아들 목에 올라탄 채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아빠. 아빠의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지만 시선은 어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들 역시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지만 시선은 아빠에게 가 있습니다. 앞으로 아들의 시선은 늘 아빠에게 고정되고, 발걸음은 언제나 아빠가 원하는 곳을 향하겠죠. 퇴행성 질환으로 인해 어린아이처럼 변해가는 아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런 아빠 곁에서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이야기를 아들의 시각에서 담담하고 유머러스하게 전하는 그림책 “나의 작은 아빠”입니다.

이 책에는 저의 내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다정한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를 바라요.
– 작가의 말 중에서

평소 위트 있는 글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던 다비드 칼리의 자전적 요소가 담겨 있기도 한 이 그림책은 어머니가 노인성 치매에 걸려 돌봄이 필요 했던 시기에 간병을 했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작품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다정한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어 주길 바라는 작가의 바람과 당부에도 희망의 메시지가 느껴집니다.

책표지의 “나의 작은 아빠”라는 제목은 그림을 그린 장 줄리앙이 직접 썼다고 합니다. 장 줄리앙은 그림책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패션 등 다양한 문화 영역에서 경계 없이 활동하고 있는 비주얼 아티스트입니다. 인물의 동그란 눈과 길쭉한 코가 특징인데요. 이 그림을 활용한 그래픽 티셔츠와 다양한 브랜드들로 이미 국내에서도 팬들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입니다.

※ 참고로 장 줄리앙은 2022년 동대문DDP에서 열렸던 <그러면, 거기> 전시에 이어 올해는 경주에 있는 우양미술관에서 <여전히, 거기> 전시를 열었습니다.

유유리딩

첫 읽기의 시작은 엄마가 사준 "소공녀"라고 믿고 있어요. 무미건조한 회사원의 삶을 살다 엄마라는 혁명에 참여했습니다. 그림을 감상할 때 자유로움을 느껴요. 읽기 공동체, 문턱이 낮은 숲의 도서관을 소망하며 사서를 준비하고 있어요. 평생 책과 사람을 통해 읽고 쓰고 배우는 삶을 위해, 몸 하나 남는 정신적 해방을 맞는 순간을 위해, 문장들에 기대어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인터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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