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어떤 꽃이 세상에서 가장 예쁠까요? 오늘 아이가 해야 할 숙제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에 대한 글쓰기입니다. 뭘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아이에게 엄마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그야 당연히 벼꽃이지.”라고 말합니다.

벼꽃? 처음 들어본 꽃이름이에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책을 보는 저 역시 갸우뚱…). 그런 아이에게 엄마가 내민 것은 낡은 공책 한 권. 첫 장에는 ‘청풍 국민학교 5학년 2반 김순희’라고 적혀 있습니다. ‘김순희? 김순희가 누구더라?’ 궁금해 하던 아이는 언제나 인자한 미소로 꼬옥 안아주시던 외할머니를 떠올립니다.

낡은 일기장 속에는 외할머니의 어릴 적부터 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아이는 할머니가 걸어왔던 길을 따라 걷습니다. 그 길에는 자기 또래의 어린 할머니도 있고, 첫 아이를 낳은 감격에 겨워하는 이제 막 엄마가 된 할머니도 있습니다. 첫 돌 맞은 외손녀가 쌀처럼 귀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가득 담은 백설기 떡 만드시는 외할머니도 있구요.

그저 ‘우리 강아지~’하며 안아주시던 주름 자글자글한 할머니의 모습만 기억하던 아이에게 일기장에 담긴 할머니의 삶은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의 무게로 다가옵니다. 메뚜기 잡으러 벼 사이를 뛰어 다니던 국민학교 5학년 순희에게 벼꽃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꽃입니다. 첫 아이의 이름을 ‘미화(米花)’라고 지어준 엄마 순희에게 벼꽃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귀하고 소중한 꽃입니다. 어쩌면 마지막 추수가 될지도 모를 가을걷이를 끝내고 누런 바닥이 드러난 논을 바라보며 내년에 손녀와 벼꽃을 함께 보기로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싶은 할머니 순희에게 벼꽃은 자신이 살아온 삶 그 자체고 자식들을 위한 꿈과 희망입니다.

일기장 속의 할머니가 나에게 알려 주셨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은
하얀 벼꽃이라는 것을.
그리고
벼꽃이 영글어 쌀이 되고
쌀이 부풀어 밥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먹는 밥은 꽃밥이다.
수백 송이 벼꽃이 피어난
꽃 밥

아까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이젠 아이에게도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은 두 말 할 것 없이 벼꽃입니다. 쌀처럼 귀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할머니의 바람이 가득 담긴 벼꽃. 이제 아이는 돌아가신 할머니와 마음 속으로 다시 한 번 약속할 겁니다. 자신의 삶에 밥풀처럼 하얀 벼꽃을 가득 피울 거라고…


꽃밥

꽃밥

정연숙 | 그림 김동성 | 논장
(발행 : 2020/01/28)

“꽃밥”은 그 존재조차 아는 이 많지 않은 작디 작은 벼꽃 한 송이, 그 꽃이 영글어 만들어낸 쌀 한 톨에 담긴 할머니의 일생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게 해주는 그림책입니다. 오랜 세월 우리의 주식이었던 쌀 농사와 관련된 다양한 시대상과 대한민국 경제의 발전상을 엿볼 수 있는 건 덤입니다.

1970년대에 136Kg이었던 1인당 한 해 쌀 소비량이 2018년에는 절반인 75Kg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시대에 따라 삶의 방식이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밥심으로 살아가는 민족입니다. 비록 쌀 소비가 줄어들었더라도 쌀 한 톨에 담긴 농부의 땀과 정성을, 우리에게 건강한 밥상을 안겨주는 땅의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의 그림 한 장으로 끝내고 저 혼자만 보기에는 가슴 깊숙이 여운을 안겨주는 김동성 작가의 그림들이 너무 아까워서 아래에 몇 장 더 올립니다.

꽃밥 꽃밥 꽃밥 꽃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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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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