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의 공원

엄마는 공원의 나무와 나뭇잎을 그리워했어요.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의 감촉을 그리워했어요.
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소리,
그리고 자기 개를 꼭 닮은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워했어요.

마르그리트는 혼자서 공원에 가곤 합니다. 공원의 꽃과 나무들, 공원을 찾은 사람들과 그들을 꼭 닮은 반려견들… 공원의 다양한 풍경들 모두를 고스란히 담아가기라도 하려는 듯 한참을 머물며 지켜보곤 했죠. 심지어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과 사람들의 발소리까지도 마르그리트는 놓치지 않았어요.

집에 돌아와서는 공원에서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엄마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그 공원을 아주 많이 그리워했기 때문이죠(책에서는 엄마의 상황에 대해 따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공원을 그리워한다는 건 공원에 가봤다는 뜻이니 예전에는 직접 갈 수 있었지만 현재는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정도만 짐작해 볼 뿐입니다).

마르그리트는 엄마가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공원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공원의 흙을 퍼다 다락방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몇 날 며칠이 지나도록 공원에 가서 흙을 퍼왔고 마침내 다락방 바닥이 온통 공원의 흙으로 뒤덮인 날 마르그리트는 씨앗을 심었습니다. 씨앗이 싹을 틔우고 새싹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습니다. 나무들은 숲을 이루고 마르그리트네 집안 가득 퍼져 나갑니다.

마침내 엄마가 그리워하던 공원이 마르그리트의 집에 그대로 옮겨진 겁니다. 마르그리트와 엄마의 공원을 가장 먼저 찾아온 건 여러 색깔로 물들어가는 나뭇잎이었습니다. 그 다음엔 보드라운 바람, 그 다음엔 사람들의 발소리…

공원을 그리워하는 엄마, 그런 엄마를 위해 다락방에 공원을 그대로 옮겨온 마르그리트. 마르그리트가 심은 씨앗에 싹이 움트는 순간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마르그리트의 의식의 흐름 속인지 구분이 모호해집니다. 굳이 구분해야 할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마르그리트의 간절한 바람이 엄마의 마음을 그리웠던 풍경들로 가득 채워 주었으니까요.

엄마를 위해 공원의 꽃 한 송이 꺾어올 법도 한데 마르그리트는 그 대신 흙을 퍼오고 거기에 씨앗을 심습니다. 작은 꽃 한 송이일지라도 엄마의 소중한 추억으로 가득한 공원의 일부라 여겼기에 차마 꺾을 수 없었던 것 아닐까요. 엄마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해주고 싶은 아이의 한 없이 순수하고 여린 마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사라 스테파니니의 붓 끝에서 펼쳐지는 초현실주의 속에서 나까지도 인식과 초의식의 모호함에 빠져듭니다. 어쩌면 집에서 마르그리트를기다리고 있었던 건 엄마가 아니라 그저 엄마에 대한 그리움 아니었을까, 공원은 엄마와의 추억이 진하게 배어 있는 곳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마저 듭니다.

흐릿함은 선명함으로, 선명함은 모호함으로 채운 그림 속에 담아낸 이야기는 보는 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은 그림책 “마르그리트의 공원”. 그리움으로 텅 빈 엄마의 마음을 설렘과 희망으로 가득 채워준 아이의 순수한 사랑을 담은 이야기 건, 공원을 거닐며 엄마와의 추억을 더듬고 또 그 공원을 그대로 집 안에 옮겨 놓으며 엄마의 부재로 인한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한 아이의 이야기 건 그 끝은 웃음과 희망입니다.


마르그리트의 공원

마르그리트의 공원

(원제: Le parc de Marguerite)
글/그림 사라 스테파니니 | 옮김 정혜경 | 사계절
(2022/04/20)

사랑하는 엄마가 그리워하는 공원을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엄마에게 전해주고픈 아이의 간절한 마음을 초현실주의적 그림으로 담아낸 그림책 “마르그리트의 공원”. 사라 스테파니니의 경계의 모호함을 넘나드는 듯한 그림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면 ‘아 참 좋다!’ 할, 그렇지 않을 경우 ‘뭐지?’ 하고 덮어 버릴 수도 있는 아주 묘한 느낌의 그림책입니다.

제 경우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면서도 초현실주의에 대해서 영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사라 스테파니니의 “마르그리트의 공원” 덕분에 ‘아, 초현실주의란 이런 거구나!’ 하고 살짝 느낄 수 있었던 그림책입니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 마르그리트의 이름도 마그리트와 비슷하네요. ‘초현실주의, 르네 마그리트, 다다이즘의 격렬한 파괴 운동을 수정하여 발전시킨 예술 운동, 문학의 경우 이성의 속박에서 벗어나 비합리적인 것과 의식 속에 숨어 있는 비현실의 세계를 자동기술법과 같은 수법으로 표현하였다’ 초현실주의를 이렇게 감성이 아닌 암기식으로 외우고만 있었던 분들에게 이 그림책을 권합니다. 😅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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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미
박선미
2022/07/09 14:09

엄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네요. 나뭇잎을 스쳐가는 바람소리, 미소짓고 있는 엄마와 아이, 음악이 흐를것 같은 기류의 흐름이 느껴질듯 합니다

이 선주
Editor
2022/07/13 20:06
답글 to  박선미

선미님 취향일 것 같은 그림책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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