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날까 봐 그랬어

혼날까 봐 그랬어

(원제: La Verdad Verdadera)
글/그림 나넨 | 옮김 문주선 | 후즈갓마이테일
(2022/04/21)


“La Verdad Verdadera”, 원서 제목의 글자 나열이 재미있어 보여 번역기를 돌려보았더니 ‘진정한 진실’이라고 나옵니다. “혼날까 봐 그랬어”란 번역판 제목의 의미와 함께 생각해 보니 대략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감이 오네요. ‘혼날까 봐’ 그런 아이의 ‘진정한 진실’은 무엇이었을까요?

혼날까 봐 그랬어

면지 그림에 외출했다 돌아오는 할머니가 보입니다. 철재 난간을 잡고 천천히 계단을 오르고 있는 할머니 시선을 따라가면 문 앞에 쓰러진 화분과 빼꼼히 열려있는 문이 보입니다. 그새  누가 왔나? 혹시 무슨 일 있나? 당황스러운 할머니의 표정, 뭔가 몹시 불안한 느낌이 드네요.

혼날까 봐 그랬어

문이 열렸어.
집에 들어온 할머니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말했지.
“고작 몇 분 나가 있었는데 이 꼴이 대체 뭐니?”

‘이 꼴이 대체 뭐니?’ 외에는 달리할 말이 없을 것 같은 상황입니다. 잔뜩 주눅 든 표정으로 눈치를 보던 아이는 할머니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어요.

혼날까 봐 그랬어

“어, 그러니까… 아!
고양이가 한 마리 들어왔었어요.”

그 순간 아이 옆에 생겨난 낯선 캐릭터, 표정이나 자세가 아이와 꼭 닮아 보입니다. 진지한 아이의 표정과 달리 할머니의 심드렁한 표정이 대조를 이루고 있어요. 두 사람의 크기 차이도 대비되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구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할머니 말에 아이는 고양이를 쫓아내려다 잘 안되었다, 할머니 원피스가 잘 어울린다, 옆집 친구가 놀러 왔었다…

할머니가 추궁할 때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호한 아이의 변명이 덧붙고 그럴 때마다 변명들이 생명을 가진 선명한 캐릭터로 변해 아이 주변에 나타납니다. 주거니 받거니 이어지는 말을 따라 눈길이 화면 왼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심상찮게 변해가는 할머니의 표정을 보면서 마음이 조마조마, 변명을 늘어놓을 때마다 아이 곁에 늘어가는 거짓말들을 보면서 또 마음이 조마조마. 이 거짓말의 끝은 어디일까요?

“이제까지 너는 작은 거짓말, 하찮은 거짓말, 하얀 거짓말, 비겁한 거짓말, 그리고 냄새나는 거짓말을 했어! 하지만, 뭐 아주 나쁘지는 않았지.”

“하지만 네가 지금 한 거짓말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나쁜 거짓말이야!”

할머니와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 다양한 거짓말이 등장합니다. 작은 거짓말은 무엇이고 하얀 거짓말은 무엇이었으며 비겁한 거짓말은 어떤 것이고 냄새나는 거짓말은 무엇인지, 어마어마하게 크고 나쁜 거짓말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생겼는지 찾아보세요. 막 생겨난 거짓말이 거짓말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거짓말들의 표정이나 동작도 유심히 살펴보세요.

혼날까 봐 그랬어

거짓말해서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어질 거라고 할머니가 아이에게 소리치지자마 할머니 곁에도 생겨난 거대한 캐릭터 하나. 이제 양쪽 화면이 거짓말로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집이 엉망이 된 것은 보이지 않아요.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결국은 거짓이 엉망진창이 된 집을 가려버렸습니다

과연 진실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이들은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대략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잘못한 행동을 사실대로 말했을 때 어른들에게 혼이 날것 같아서, 또 다른 하나는 사실을 말했을 때 어른들이 실망하는 것이 두려워서라고 해요. 어른들이 실망하는 것이 두려워서라는 점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누군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아이에게 있기에 거짓말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상황만 보고 아이를 몰아치거나 다그치지 말고 잠시 감정을 추스린 후 아이가 왜 거짓말을 했는지 물어봐 주세요.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죠. 과도한 반응은 더 많은 거짓말을 필요로 하고 더 큰 거짓말을 불러올 뿐입니다.

이 그림책은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어 아이들과 함께 읽기 좋은 그림책이에요. 처음 읽을 땐 ‘엄마’가 ‘할머니’ 역할을, ‘아이’는 ‘아이’ 역할을 맡아서 실감 나게 읽어보세요. 그다음 서로 역할을 바꿔서 읽어보면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처음엔 아이가 왜 자꾸 거짓말을 늘어놓지 이랬던 엄마가 아이 입장에서 책을 읽다 보면 아,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나도 어릴 때 그랬었는데… 이렇게 입장이 달라질 거예요. 역할 바꿔 읽고 나면 ‘아, 그랬구나’하며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내 생각과 태도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림책 “혼날까 봐 그랬어”, 나는 아이의 마음을 먼저 보아주는 어른일까요?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감정이 먼저 앞서는 어른일까요?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배우며 자랍니다. 어른들 역시 아이들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배우며 성장합니다.


거짓말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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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미
박선미
2022/07/09 14:05

다그치지않고 시간 여유를 두고 물어봐주기 중요하죠. 실제 생활하다보면 실천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더 중요한건 화를 내거나 탓했다면 사과하는 방법에 대한 것도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을것 같아요. 화내지않기보다 사과하기가 더 어렵더라고요^^
부모,어른의 태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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