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의 새

소피아, 선생님의 생각은 너와 다르단다.
여러 갈래의 길이 나타나면,
선생님은 항상 같은 길을 선택하곤 하지.

더 나아지지도 않고, 행복해지지도 않는데 똑같은 글자를 왜 계속 써야 하나요? 구름의 크기를 잴 수 있나요? 왜 어른들은 늘 바쁜가요? 착하고 좋은 어린이면서 행복한 어린이일 수 있나요? 어른들은 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할까요?

쉴 새 없이 재잘대며 쏟아내는 소피아의 질문들. 그리고 어린 제자의 질문만큼이나 뜬금없는 선생님의 대답. 번역 탓일까 의심스러울 만큼 매끄럽지 못한 두 장면의 연결. 아마도 선생님과 제자, 어른과 아이 사이의 간극을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선생님의 맥락 없는 대답이 이어집니다. 제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기보다는 순수함과 꿈을 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고백 내지는 하소연에 가깝습니다.

언제나, 매 순간,
선생님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그리고 비행기를 탈 때마다 말이야.
나는 창밖을 보지 않아.

언제나, 매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바라보지 못하는 창밖. 선생님이 눈길조차 주지 못한 비행기 창문엔 오래전 어느 날 선생님의 머리 위를 지켜주던 새 한 마리가 여전히 선생님이 자신을 돌아봐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새를 기억해 내지 못한 채 창밖을 보지 못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갑갑함이 슬쩍 고개를 드는 바로 그 순간 소피아가 선생님에게 와락 안깁니다. 그리고 자신의 새 한 마리를 선생님의 머리 위에 얹어 줍니다. “그래서 제가 선생님께 새를 한 마리 드리려고요. 저는 이미 많거든요.” 라는 다정한 말과 함께…

만약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 선생님이었다면 여러분에게 자신의 새를 기꺼이 내어준 소피아에게 뭐라고 말해주고 싶나요? 그림책 속 선생님은 뭐라고 대답했을 것 같나요?

오, 고맙구나, 소피아.

어린 제자의 깜짝 선물에 한 걸음 물러서거나 시큰둥해 하지 않고 자신도 다가가 다정하게 고맙다는 말 건네며 선생님은 자신의 새를 다시 기억하게 됩니다. 선생님은 새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저 잊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칠판 한복판에 ‘쉬는 시간 노는 시간’이라고 큼지막하게 쓰고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낙서들로 가득 채운 뒤 선생님과 소피아와 새들은 교실 밖으로 훨훨 날아갑니다.

어쩌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선생님의 이 마지막 한 마디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새를 잃어버린 건 나이 들거나 삶에 부대껴서가 아니라 반가워! 고마워! 사랑해! 라고 말할 줄 아는 마음을 잊었기 때문은 아닌지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머리 위의 새

머리 위의 새

(원제: Pájaros en la Cabeza)
글/그림 로시오 아라야 | 옮김 김지연 | 너와숲
(2023/02/15)

소피아 머리 위의 새들은 꿈이나 동심일 수도 있고, 아이들의 호기심과 그로 인해 쏟아지는 수많은 질문들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의 마음과 꿈을 잃은 어른들에게 잊었던 꿈을 되찾아 주는 그림책, 머릿속이 질문들로 가득하지만 어른들에게 물어보기를 주저하는 아이들에겐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질문하고 머리 위의 새들을 마음껏 날려 보내라고 말해주는 그림책, 아이들의 끝없는 질문을 대하는 어른들의 올바른 자세에 대한 가이드북 같은 그림책 “머리 위의 새”입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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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미
박선미
2023/03/17 07:49

아이들에게는 용기를 북돋아주는 책, 어른들에게는 옆자리를 내어주는 책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따뜻한 책 소개 감사합니다

가온빛지기
Admin
2023/03/31 09:56
답글 to  박선미

박선미님의 명료한 한 줄 소개가 더 멋지고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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