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자신의 꿈을 찾은 이야기 “엠마”는 그냥 따스한 그림책으로만 생각해왔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담은 수필집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구요. 엠마와 모지스 두 할머니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싶었습니다. 스웨덴의 여성 화가 베타 한손의 이야기를 담은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를 읽기 전까지는…

시대와 사회가 바라는 여성상으로 살아가길 강요받는 삶을 뿌리치기 위해 아버지 앞에서 ‘여기 있으면 죽을 것만 같아요.’라고 절규하던 어린 소녀 베타 한손을 만나면서 앞서 읽었던 두 책이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엠마와 모지스 두 여성은 끓는 수프를 차마 외면하지 못했었던 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그렇게 70여 년의 세월 동안 자신의 꿈은 마음 한 켠에 담아두고서 가족과 사회가 바라는 삶을 살며 버틴 거였겠구나 하는 생각.

요즘은 다르다느니 달라진 것 하나 없다느니 등의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겠습니다. 개인마다 느끼고 생각하는 게 다 다르니 말입니다. 대신 저 자신만 돌아보았습니다. 아내와 딸 두 여성을 대하는 저의 태도가 조금 다르다는 걸(딸에게는 요즘 세상은 여자가 집안 일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라고 하고 돌아서서 아내에게는 애 얼른 밥 차려 줘야지~ 이런다는…), 보호라는 명목 하에 나 역시도 그들의 길을 가로막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걸 깨닫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베타 한손은 1910년 스웨덴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어머니는 1938년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베타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미술 교사를 권유받았고, 어머니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국어 교사가 되었지요. 교직도 소중한 일이지만 여성은 타인을 위해 생계나 가사를 책임져야지, ‘예술가’는 될 수 없다는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현대 여성의 삶은 많이 달라졌지만 남성에 비해서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습니다. 여성은 자신의 삶보다 가족 구조나 타인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요구(강요)받습니다. 때문에 여성이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답니다.

– 추천사 중에서(여성학 연구자 정희진)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는 자신을 위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쉼 없이 추구했던 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엠마”를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

(원제 : Fågeln i mig flyger vart den vill)
글/그림 사라 룬드베리 | 옮김 이유진 | 산하
(2018/07/31)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는 스웨덴의 화가 베타 한손의 어린 시절을 담은 책입니다. 124쪽 분량으로 출판사에서는 그래픽노블이라고 했는데, 외롭고 힘든 길을 씩씩하게 걸어간 선배 작가 베타 한손을 그려낸 사라 룬드베리의 글과 그림이 하도 좋아서 저는 장편 그림책으로 분류하고 오늘 소개해봅니다.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

이 책 후반부에 연이어 나오는 이 세 장의 그림이 어쩌면 사라 룬드베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핵심 아닐까요?

시골 농가의 셋째 딸 베타 한손은 어릴 적부터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자라던 시대에는 일손 바쁜 시골에서 재능대로 산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물며 여자였으니 기회조차 갖기 어려웠을 겁니다.

밭에서 일하던 아빠와 마을 아저씨들이 식사하러 집에 올 시간이 다가옵니다. 베타는 그들을 위해 상을 차리고 동시에 어린 동생도 돌봐야 하고 다른 집안 일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글보글 끓고 있는 수프를 지켜보던 베타의 마음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릅니다. 책을 한 권 가져와서 스토브를 등지고 식탁 앞에 앉아 읽기 시작합니다. 타는 냄새가 집 안에 퍼지고 사람들이 소리치며 베타를 불러댑니다. 못 들은 척 계속 책을 읽습니다. 들이닥친 아빠가 베타의 손에서 책을 잡아챕니다. 화가 나기도 하고 뒤에서 마을 사람들 보기 민망하기도 한 아빠가 몸을 부르르 떱니다.

나는 싫다.
나는 빤한 길을 가기 싫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터지고 꿈틀거린다.

몸이 꿈틀거린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모든 것을 종이에 옮기고 싶다.
내가 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곳을 떠나려니 조금은 두렵다.
그러나 떠나야겠지.
원하는 곳으로 날아가야 할
새 한 마리가
내 안에 있으니…

자신의 꿈을 찾아 가고 싶다는 한 소녀의 절규. 아빠는 한동안 베타에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결국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허락합니다.

하지만 베타의 바람대로 미술학교로 진학했는지는 책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책 후반부에 기자가 쓴 베타 한손에 대한 글 한 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으로 짐작해보자면 교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은 것으로 보입니다. 초등학교 교사는 여성의 직업이 될 수 있지만 예술가는 아니라며 아버지가 미술학교 진학을 반대했다는 내용이 나오거든요(아니면 미술학교 진학 후 예술을 계속하지는 못하고 미술 교사가 되었을 수도 있구요).

살림만 하며 사는 것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자신의 꿈을 반쪽 밖에는 이루지 못했던 베타 한손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에도 그림을 열심히 그렸고, 나중에 그녀의 그림의 가치를 알아본 엘사 비에르크만-골드슈미트라는 작가에 의해 본격적으로 화가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합니다. 새로이 열린 기회를 두고도 늙은 아버지와 농장 일 때문에 선뜻 결정하지 못하던 베타를 이번에는 아버지가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마음껏 꿈을 펼치라며 그녀의 등을 떠밀어 주었다고 해요.

드디어 자신의 꿈을 향한 여정에 오를 수 있게 된 베타 한손은 그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내 안의 새는 날개를 펴고 원하는 곳으로 날아가리라.”

그저 끓는 수프를 지켜보며 살아가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의 안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용기를 낸 베타 한손, 힘겨워도 자신 안의 새를 외면하지 않은 그녀의 삶을 통해 사라 룬드베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얼까요?


엠마

엠마

(원제 : Emma)
글 웬디 케셀만 | 그림 바바라 쿠니 | 옮김 강연숙 | 느림보
(2004/02/17)

엠마 할머니는 일흔두 번째 생일 선물로 가족들로부터 산 너머 작은 마을 그림을 선물 받습니다. 선물 받은 그림을 벽에 걸면서 자식들에게 ‘멋지다’고 말했지만 할머니 마음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림 속 마을은 할머니가 그리워하는 고향 마을이 아니었거든요.

할머니는 선물 받은 그림만 보면 웬지 시무룩해졌어요. 아마도 가슴속 그리운 고향이 떠올랐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마음 깊은 곳을 엄습해 오는 묵직하고 아련한 그것, 그리움, 향수… 결국 할머니는 자신의 가슴 속에 묻혀 있던 고향 마을을 자기 손으로 직접 그리기로 마음 먹습니다.

70세에 처음 붓을 들어 화폭 안에 자신의 세계를 그려낸 프랑스의 화가 엠마 스턴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그림책 “엠마”. 정감 가득하고 서정미 넘치는 엠마 할머니의 그림을 그림책 속에 그대로 재현해낸 바바라 쿠니의 그림이 따스한 그림책입니다.

“엠마” 리뷰 보기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원제 : Grandma Moses – My Life’s History)
글/그림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 옮김 류승경 | 수오서재
(2017/12/16)

미국의 국민화가로 ‘모지스 할머니(Grandma Moses)’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알려진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76세에 그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엠마”의 주인공 엠마 스턴과 태어난 시기나 활동한 시기가 비슷하고 그림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도 비슷합니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는 그림책은 아니고 76세에 그림을 시작해 101세까지 그림을 그린 모지스 할머니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수필집입니다. ‘삶을 사랑한 화가’라 불렸던 모지스 할머니의 삶이 담겨 있는 따뜻한 글과 그림을 감상하면서 일상의 소중함과 삶이 전하는 기쁨을 가슴 가득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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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은숙
염은숙
2022/02/11 15:04

언제나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이 선주
Editor
2022/02/14 21:51
답글 to  염은숙

감사합니다. 은숙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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