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공

노란공

(원제 : A Bola Amarela)
다니엘 페어 | 그림 베르나르두 카르발류 | 옮김 민찬기 | 그림책공작소
(발행 : 2020/06/01)


테니스 관련 그림책일까? 생각한 건 표지 그림에서도 그랬지만 테니스 채를 든 두 아이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면지 가득한 그림 때문이기도 했어요. 물론 베르나르두 카르발류라는 작가 이름을 확인한 순간 이미 기대를 했어요. 분명히 이 그림책은 평범 이상의 재미있고 특별한 책일 거라는걸.

노란공

면지를 지나 속표지 왼쪽 페이지의 안내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번호마다 알록달록 다른 색깔로 쓰인 것도 그렇지만 더욱 특이한 건 번호가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에요. 1번 다음 맨 아래 놓인 2번 그리고 두 줄 올라가 3번… 이렇게 번호를 찾아가며 안내 문구를 읽어 봅니다. 가장 알쏭달쏭했던 건 1번과 2번을 합친 문구예요. ‘책을 꼭 페이지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발칵 뒤집는 물성의 파격!’이라는 문구.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생각하며 오른쪽 속표지로 고개를 돌리니 주인공 여자아이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루이스, 시작할까?
그래 좋아! 루이사.

노란공

아이들 기합 소리와 퐁! 핑! 탕! 코트에 노란 테니스공 튕기는 소리, 라켓 휘두르는 소리가 함께 들리는 것 같아요. 숨 막히는 대결을 펼치고 있는 루이사와 루이스 표정과 동작이 아주 리얼합니다. 하하 둘 셋… 받아랏! 하고 루이사가 튕겨낸 테니스 공을 따라 부지런히 눈을 움직여 보세요. 바로 눈앞에서 공이 왔다 갔다 하며 테니스 시합이 벌어지고 있는 느낌이에요.

히아아오오오!!! 소리와 함께 루이사가 힘껏 쳐낸 공을 다시 루이스가 되받아쳤어요. 그리고 그 공은…… 루이스 쪽 하프 라인 네트 맞고 그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슈욱! 소리와 함께. 의기양양하게 웃는 루이사를 보고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되받아치며 공을 가지러 간 루이스. 그런데 뭔가 잘못되었나 봐요.

노란공

네트에 맞고 아래로 떨어진 공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어요.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파도야 놀자”처럼 두 아이의 테니스 시합은 책이 접히는 제본선을 하프라인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책의 경계면인 네트 아래서 공을 찾느라 루이스의 상반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참을더듬더듬 공을 찾던 루이스는 루이사에게 말했어요. 함께 공을 찾으러 가자고. 루이스를 따라 루이사도 경계면 안쪽 어딘가로 공을 찾으러 가기로 합니다. 그러니 우리 역시 루이사와 루이스를 따라 가야겠네요. 그렇지 않으면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버릴테니까요. ^^

노란공

그렇게 공을 찾아 불쑥 들어온 세상에서는 흥겨운 파티가 한창이에요. 두리번거리던 루이사가 하는 말이 재미있어요.

이 사람들은 우리 책에서 이렇게 신나는 파티를 하면서 어쩜 우릴 부르지도 않았다니?!

그러게요. 바로 옆 페이지에서 이렇게 자기들끼리만 재미있게 놀고 있었군요.^^ 하지만 아이들은 이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잃어버린 노란공의 행방을 찾기로 했어요. 바텐더 아저씨는 노란공을 못 봤다며 아이들에게 다섯 쪽 뒤인 18페이지에 분실물 보관소 사바나로 가보라고 했어요. 18페이지로 가보라는 바텐더 아저씨  말에 부랴부랴 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페이지 번호를 확인해 보았어요. 이 페이지는 13페이지, 아이들과 함께 다섯 쪽 뒤로 휘리릭 건너갑니다.

노란공

이곳은 18페이지, 바텐더 아저씨가 말한 분실물 보관소가 있는 사바나입니다. 하지만 그곳에도 노란공은 없었어요. 분실물 보관소에는 21개의 공이 보관되어 있지만 노란공은 없다면서 관리자는 28페이지에 모르는 게 하나도 없는 토끼를 찾아가 물어보라고 했어요. 낯선 세상에 들어와 당황한 기색도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다시 찬찬히 노란공을 찾아 길을 떠나는 아이들. 우리도 다시 아이들을 따라가 볼까요? 평화로운 사바나의 정경을 찬찬히 누려보면서. 물론 여기 18페이지에서 28페이지로 가야 한다는 사실은 절대 잊지 마세요!

이렇게 이야기는 페이지를 이리저리 넘나들며 진행됩니다. 마치 테니스 공이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요. 처음 ‘책을 꼭 페이지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발칵 뒤집는 물성의 파격!’이라는 안내 문구가 무슨 의미였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노란공을 찾는 과정은 하나의 놀이가 되었어요. 그림책 주인공들과 함께 즐기는 재미있고 즐거운 놀이!

노란공

모르는 게 하나도 없지만 노란공의 행방은 모르는 토끼를 만나고, 말하는 14페이지와도 만나고, 하느님과 천사도 만나고, 이이이히히힝 소리 내며 웃는 재미난 당나귀도 만나면서 여러 페이지를 오간 끝에 드디어 노란공을 찾았어요. 아아! 이렇게 반가울 수가~ 마치 내공을 찾은 것 같이 기쁘고 짜릿합니다.

우여곡절 다 겪으며 다시 테니스 코트로 돌아온 루이사와 루이스. 기분 좋게 시합을 다시 시작하려는데, 아뿔싸! 또 다른 일이 발생했으니 오늘 내로 둘은 승부를 가를 수 있을까요?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그렇게 다시 페이지를 뒤적여야 하는 이야기. 루이사와 루이스에게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그림책으로 확인해 보세요. 우리는 또다시 테니스 코트 네트 아래 그림책 제본선 사이로 들어가야 해요.

독자가 적극적으로 책을 읽고 책에 나온 대로 책장을 넘기지 않으면 이 그림책의 스토리는 흐트러져 엉망이 되고 말아요. 노란공의 행방 역시 묘연해지겠죠. 책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책의 문장 하나하나 주의 깊게 살피며 책을 읽는 동안 오롯이 책과 같이 호흡하는 것입니다. 공감 가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의문이 일거나 자신의 의견을 남기고 싶은 문장에 메모를 남기는 식으로 책과 대화를 하듯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해요. 루이사와 루이스가 책 속에서 계속해서 대화를 하고 독자는 그 대화에 귀 기울이고 페이지를 넘겨가며 적극적으로 노란공을 찾아 나섰던 것처럼요. 이처럼 이 그림책은 아이들이 책을 적극적으로 즐기면서 읽는 방법을 재미있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책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신선한 발상으로 책 읽는 색다른 재미를 안겨주는 그림책 “노란공”, 다니엘 페어와 베르나르두 카르발류의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빛나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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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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