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웃었다
산이 웃었다

(원제: Père Montagne)
글/그림 사라 도나티 | 옮김 나선희 | 책빛
(2022/10/30)


초록이 자취를 감춘 초겨울, 초록으로 가득한 싱그러운 그림책을 만났습니다. 제목까지도 싱그러운 그림책 “산이 웃었다”, 노란 점퍼를 입은 아이는 산을 안고 있는 걸까요? 산에 안긴 걸까요? 가만히 눈을 감고 엎드려 명상을 하고 있는 듯한 아이 모습에 내 마음까지도 푸근해집니다. 메말라 건조해진 마음에 푸른 산 향기가 불어옵니다.

도시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귀가 먹먹해지는 자동차 경적 소리가
몬테네로가의 작은 아파트 꼭대기까지 올라옵니다.
오늘은 캠핑 가는 날, 아가타는 영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칙칙한 회색 콘크리트 숲 사이에서 깨어난 아가타의 마음은 창밖으로 보이는 아침 풍경 같습니다. 찌르는 듯 날카롭고 잔뜩 예민해져 있는 상태예요. 바깥 풍경이 그대로 반영된 듯 아가타 집 창가에 놓인 식물들 마저도 칙칙하고 음울해 보입니다.

산이 웃었다

마음이 내키지 않으니 온갖 것이 다 불만입니다. 가기 싫다며 투덜대는 아가타에게 아빠는 하얀 조약돌을 하나 쥐여주면서 가보면 생각이 바뀔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세상 온갖 풍파를 다 짊어진 모습으로 캠핑을 떠나는 아가타, 버스에서도 야영장에서도 아가타는 빙빙 겉돌았어요. 집도 가게도 환한 불빛도 없는, 아가타가 살고 있는 도시와 다르게 모든 게 멈춘 것처럼 보이는 산. 텐트 치는 법, 불 피우는 법, 지팡이 만드는 법, 아가타에게는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다들 무엇이든 척척척 잘 하고 신나있는데 비해 아가타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멀찌감치 혼자 떨어져 솔방울만 툭툭 차던 아가타는 솔방울을 따라 야영장에서 점점 멀어졌어요. 그렇게 길을 잃고 헤매던 아가타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주머니 속 조약돌을 있는 힘껏 던져 버렸어요. 아침에 아빠가 건네주신 하얀 조약돌이었지요. 그때였어요.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아가타를 휩쓸고 지나갔고 그 바람에 아가타는 그만 저 아래 바닥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어요.

산이 웃었다

아가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그림도 회전을 합니다. 옆으로 넘기며 보아야 했던 페이지를 돌려 이제는 위로 넘기면서 보아야 해요.

아가타의 세상이 거꾸로 뒤집혔습니다. 폭신한 이끼 위로 떨어진 아가타의 눈에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하나둘 들어옵니다. 꽃과 풀이 보이고 나비가 보입니다. 멀리 산꼭대기가 보입니다. 산의 웃는 얼굴이 보입니다. 아가타는 산의 웃는 얼굴을 보고 산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방인이었던 아가타가 숲의 풍경 속으로 들어갑니다.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활짝 펴지고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갑니다.

저 앞에서 슬그머니 웃고 있는 산의 얼굴, 여러분도 보셨나요?

아가타는 이제 길을 찾으려고 해요.
돌아갈 준비가 되었거든요.
아가타가 발을 내딛자 메뚜기가 길을 내주었고,
다른 동물들도 차례로 풀숲으로 흩어졌어요.

마음 열고 바라보면 온 세상이 나의 것. 내가 산이고 산이 나입니다. 모든 게 멈춘 듯 똑같은 색이었던 산은 이제 사라지고 없습니다. 아가타가 있는 아가타를 품고 있는 유일한 산이지요.

산이 웃었다

그날 비로소 세상과 하나가 되는 기적을 경험한 아가타. 작고 하얀 조약돌을 품은 아가타는 큰 산을 바라보며 웃고 아가타를 품은 산은 조약돌처럼 박힌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습니다. 온 우주의 품에 안겨 무한의 사랑을 느끼며 아가타는 잠이 들었습니다.

아가타는 다시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환하게 웃어 주던 산을 기억할 거예요.

걷고 달리고 넘어져 떨어지고 뒤집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속한 세계를 제대로 바라보게 된 아가타.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무엇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꽃, 풀, 나비, 이끼, 나뭇잎, 조약돌 그곳의 나 역시 작디작은 존재, 이 모든 것을 품은 산, 멀리서 바라보면 그 산 역시 광대한 우주의 한 조각입니다. 겹겹이 둘러싼 무한의 우주 속에서 그 아득한 존재들이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며 서로를 안아주고 품어준다는 진리를 통해 나와 네가 다르지 않음을, 우리가 제각각 동떨어진 채 무관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날의 길 잃기를 통해 아가타는 알게 된 것이겠지요.

치유와 위로, 관계 맺기, 그리고 성장 이야기를 담은 아름다운 그림책 “산이 웃었다”, 세상이 아름다운 건 내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네가 있기 때문이지요. 수많은 너의 안녕이 바로 나의 안녕입니다. 내가 웃자 산이 웃었습니다. 온 세상이 함께 웃었습니다.


※ 함께 읽어 보세요

“산이 웃었다”는 가족의 품을 떠나 여름 캠프에서 낯선 친구들과 어울리고 자연과 교감하며 성장하고, 삶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며 아이 스스로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는 점에서 “여름에 만나요”(파니 드레예 / 위고 / 2022)와 많이 닮았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에 안겨 치유받는다는 점에서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냄으로써 자신을 가득 채우고 돌아가는 모습을 담은 로이크 프루아사르의 “나의 오두막”과도 닮았구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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