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는 간식을 먹지 않아

텅 빈 거리에 나타난 앙상한 늑대 한 마리. 들개 아니냐구요? 아뇨, 늑대 맞습니다. 하지만 이 늑대는 ‘개’인척 하고 맛있는 저녁 준비가 한창인 집의 문을 두드립니다. 집주인 할머니는 늑대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맛있는 저녁 식사뿐만 아니라 따뜻한 잠자리도 내어 주었죠.

그 날 이후 늑대는 무시무시한 이빨과 흉칙한 발톱을 감춘 채 ‘개’로 살아갑니다. 자신의 본성을 다 버리고 말이죠. ‘멍멍이’라 불리우고, 목줄에 리본까지 달아도 늑대는 화를 내지 않고 고분고분하기만 합니다. 알량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늑대라면 자존심 상했거나 부끄러워 을 온갖 것들을 다 참아냈지요.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잠자리가 있는데 뭔들 못 하겠냐는 심정으로…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더 이상 이 늑대를 돌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늑대는 다시 배고프고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맙니다. 몇 날 며칠을 기다렸지만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았고 늑대는 결국 먹을 것을 찾아 다시 길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자신의 의지로 나선 것은 아니지만 배부르고 따뜻한 보금자리를 뒤로 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온 늑대는 과연 본디 자신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누군가 던져주는 먹이에 만족하며 계속해서 ‘개’처럼 살아갈까요? 여러분이 늑대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인간이 던져주는 먹이에 길들여져버린 늑대의 모습은 요즘 어떤 집단의 모습과 많이 닮았습니다. 대한민국 1호기에서 쫓겨난 동료 언론사를 아랑곳하지 않고 비행기에 오른 언론사들, 던져주는 기사 거리를 받아다 옆 사람에게 뒤질세라 가치 판단은 커녕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고 기사 같지도 않은 기를 퍼뜨리기 바쁜 기자들, 출근하는 대통령에게 질문한 기자를 반말지거리로 윽박지르는 비서관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그 현장 다른 기자들 말입니다.

앙드레 부샤르가 언론과 기자를 꼭 집어서 이 그림책을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저에게는 지금의 우리 언론과 기자들을 정조준하고 신랄하게 꼬집는 것으로 읽힙니다. 그리고 제 생각만 그런 것은 아닐 거라 확신합니다.

사실 앙드레 부샤르는 메시지를 하나 더 숨겨두었습니다. 이야기 초반에 늑대가 ‘개’인척 하고 할머니 집에 들어갈 때 그림책 속 나레이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 개는 사실 늑대예요!
하지만 쉿!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요.

저 개가 늑대라고 말하면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고 만다면서 말이죠. 여러분은 그 순간 어떻게 하셨나요? 할머니에게 ‘저 개는 사실 늑대예요!’라고 알려주었나요? 아니면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서 강요된 침묵에 순응하셨나요?

앙드레 부샤르가 언론과 기자들에게 묻습니다. 야생의 늑대처럼 끝없이 질문해야 할 당신들은 던져주는 기사 거리만 받아쓰며 침묵할 것인가? 앙드레 부샤르가 우리 시민들에게도 묻습니다. 언론이 입을 꾹 닫고 받아쓰기만 하고 있다고 우리 시민과 이 사회도 침묵할 것인가?


늑대는 간식을 먹지 않아

늑대는 간식을 먹지 않아

(원제: La double vie de Médor)
글/그림 앙드레 부샤르 | 옮김 이정주 | 어린이작가정신
(2021/06/24)

저는 오늘 요즘의 언론과 기자들에게 한 소리 하려고 이 책을 소개했지만 “늑대는 간식을 먹지 않아”는 기발한 상상력과 깜짝 반전 스토리만으로도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기에 충분 매력적인 그림책입니다. 보는 이마다 각자의 시각으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뽑아내는 재미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늑대는 어떻게 해서 개가 되었을까?’에 대한 해답도 이 그림책에 들어 있으니까요.

나의 선택이 내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내 꿈을 버리는 순간 우리 삶은 또 어떻게 뒤바뀔 수 있는지 재미나지만 신랄할 풍자를 통해 보여주는 그림책, 내 자신을 포기해서라도 지키고 싶은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누구고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해주는 그림책 “늑대는 간식을 먹지 않아”입니다.


함께 읽어 보세요 : 갈색 아침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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쟌이맘
쟌이맘
2022/11/25 08:53

단순한 그림책 스토리 소개에 그치지않은 가온빛만의 이런 메시지가 담긴 소개, 오늘도 다시한번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갑니다. (넘 오랜만에 남기는 댓글 ㅠㅠ) 다 읽고난 지금, 머릿속을 맴도는 이 구절에 마음이 무겁네요.
“… 강요된 침묵에 순응하였는가…”
더 깨어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가온빛지기
Admin
2022/11/26 16:53
답글 to  쟌이맘

쟌이맘님,
언제나 함께 해주셔서 늘 든든합니다!
날씨가 본격적으로 쌀쌀해지려고 하네요. 쟌이맘님, 그리고 아이와 가족분 모두 건강 잘 챙기세요!

엔돌*
엔돌*
2022/11/26 05:34

언론개혁이 반드시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끼는 요즘. 이 책을 통해 또 한 번 그 마음을 더 다지게 되네요.

가온빛지기
Admin
2022/11/26 16:54
답글 to  엔돌*

엔돌* 님, 공감 감사합니다~
그림책으로 좋은 이야기만 나눌 수 있는 세상 곧 오겠죠~ 함께 기다리는 이들 있어서 든든합니다!

안영신
안영신
2022/12/13 21:42

와, 그림책을 보는 시각에 한 번 더 감탄하며 엄지 척 !! 올려드립니다. (음, 갑자기 누군가의 따봉이 생각나서 별로네요 ㅠㅠ 죄송)
하지만 가온빛에게는 진정한 최고의 찬사를 드립니다.

참,중간에 살짝 오타가 아닌가 싶습니다. (늑대는 다시 배고고 -> 배고프고)
근데 저 가온빛에서 오타 본거 처음 ^^::이라 신기해서 말씀드려요. 🙂

Last edited 1 year ago by 안영신
가온빛지기
Admin
2022/12/13 22:20
답글 to  안영신

안영신님, 오타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방금 수정했습니다. 가온빛 오타 종종 있습니다. 예전에 쓰던 글 읽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럴때마다 늘 오타나 어색한 문장들 발견해서 수정하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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