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ghwayman

The Highwayman

그림 찰스키핑 | 글 앨프리드 노이스
(1981)

※ 1981년 케이트 그린어웨이상 수상작

※ 본 글은 2013년 ‘Oxford University Press’에서 출간한 페이퍼백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The Highwayman』은 영국의 시인 앨프리드 노이스(Alfred Noyes)가 1906년에 발표한 시를 원작으로 한 그림책입니다.

One kiss, my bonny sweetheart, I’m after a prize to-night,
But I shall be back with the yellow gold before the morning light;
Yet, if they press me sharply, and harry me through the day,
Then look for me by moonlight,
Watch for me by moonlight,
I’ll come to thee by moonlight, though hell should bar the way.

시 전문 보기

위에 인용한 구절을 풀이하자면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키스해 줘요 내 사랑, 오늘 밤 난 황금을 훔칠 거예요. 동이 트기 전에 돌아올게요. 하지만 날 잡으려는 놈들이 하루 종일 쫓아온다면 달빛에 숨어서라도 당신에게 돌아올게요. 지옥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해도 반드시 당신에게 돌아올게요.’

앨프리드 노이스가 우리 나이로 스물여섯 살에 이 시를 썼는데요. 딱 20대에 걸맞는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불처럼 뜨겁고 앞뒤 가리지 않는 맹목적인 사랑, 이 세상에 오로지 사랑하는 두 사람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사랑 말입니다.

노상강도, 여관집 딸, 그리고 군인들, 등장 인물은 이렇습니다. 노상강도와 여관집 딸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노상강도는 매일 밤 여관에 찾아왔다 아침이면 사라지죠. 이 사실을 눈치 챈 군인들이 노상강도를 잡기 위해 여관집 딸을 미끼로 삼습니다. 군인들이 잠복해 있음을 알리기 위해 여관집 딸은 군인들의 총으로 자살합니다. 연인을 찾아오던 노상강도는 그 총소리를 듣고 달아나죠. 나중에 자신을 위해 연인이 죽음을 선택했다는 걸 알게 된 노상강도가 복수의 칼을 뽑아들고 나타나지만 그 역시 군인들의 총에 목숨을 잃고 맙니다.

The Highwayman

The Highwayman

The Highwayman

하지만 죽음도 이들의 사랑을 가로막지는 못합니다. 지옥이 막아서더라도 당신에게 돌아오겠다던 노상강도의 맹세처럼 말이죠. 여관집 딸과 노상강도는 군인들의 총에 목숨을 잃었지만 여전히 겨울밤이면 노상강도는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여관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여관에서는 여전히 여관집 딸이 그를 기다리고 있죠.

찰스 키핑은 똑같은 그림의 명암의 반전을 통해 살아 있는 연인과 유령이 된 연인을 대비 시켰습니다. 아래에서 첫 번째 그림은 두 연인이 살아 있을 때, 두 번째 그림은 유령이 되어 떠도는 모습입니다.

The Highwayman

The Highwayman

글이 적지 않지만 굳이 글의 내용을 모른 채 보더라도 찰스 키핑의 자극적이고 충동적이면서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묘사한 그림 덕분에 그림만으로도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노상강도가 찾아오길 기다리는 여관집 딸의 표정엔 설렘 가득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여관을 점거한 채 나약한 여인을 핍박하는 군인들을 묘사한 두세 장의 그림만으로 독자로 하여금 강도는 의적이고, 군인들은 탐관오리라고 믿게 만들죠. 연인의 죽음을 뒤늦게 알고 말 위에서 울부짖는 노상강도의 모습이나 피범벅이 된 그가 숨이 멎어가는 순간까지도 연인에게 가 닿으려고 마지막 힘을 자아내는 장면에서는 전율이 느껴집니다.

강렬한 그림 속에서도 여린 아이의 마음이 느껴지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이 그림책에서 찰스 키핑은 확신으로 가득합니다.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여인, 자신을 위해 목숨을 내던진 연인을 위해 주저없이 죽음을 향해 내달리는 사내. 50대 후반이었던 이 시기에 혹시나 새로운 사랑에 빠졌던 것은 아닐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1952년(28세)에 독일계 여성과 결혼해 슬하에 자식을 넷 두었더군요.

아쉽게도 『The Highwayman』은 케이트 그린어웨이 메달 수상작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출간되지는 않았습니다. 주인공이 노상강도라는 점, 또 한 명의 주인공은 자살한다는 점, 두 주인공의 주검을 잔혹하게 표현했다는 점, 군인들이 여자 주인공을 인질로 잡고 노상강도를 유인하는 과정에서 성추행하는 장면이 나온다는 점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림책 소비 연령층이 보기에 내용과 그림 모두 적절하지 않다는 출판사들의 판단 때문이겠죠.

참고로 제가 갖고 있는 건 페이퍼백입니다. 혹시나 여러분 주변 도서관에 이 그림책을 소장한 곳이 있다면 번거롭더라도 꼭 한 번 빌려 보시길 권합니다. 이 그림책을 보지 않고 찰스 키핑의 작품을 봤다고 하기엔 좀 아쉬우니까요~ 😉


찰스 키핑의 그림책들


내 오랜 그림책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5 1 vote
Article Rating
알림
알림 설정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모든 댓글 보기
0
이 글 어땠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