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현장의 복구 작업자들은 세계무역센터 잔해 속에서 나무 한 그루를 발견합니다.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상처투성이 가지 끝에서 초록빛 잎이 돋아나 있었죠. 참사 현장에서 마지막으로 구조된 살아 있는 생명체였습니다.

뉴욕시는 이 나무를 묘목장으로 옮겨 심었고 몇 년간의 치유 과정을 거친 후 2010년 12월 9⋅11 기념관으로 다시 옮겨 심었습니다. 나무의 몸통과 아래쪽의 거친 나무껍질은 테러 사건 이전의 삶을 상징하고, 선명하게 보이는 경계선은 참사 당일을 나타내며, 그 위로 매끄럽게 자라난 가지들은 참사 이후의 삶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매년 봄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이 나무를 사람들은 ‘Survivor Tree’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참사나 비극으로 고통 받는 전 세계의 지역 사회에 뉴욕의 부모나무처럼 깊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 회복의 힘과 희망을 전하기 위해 이 나무의 묘목을 보내주는 ‘Survivor Tree Seedling Program’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9⋅11 테러 20주년이었던 2021년에 이 나무의 생명력과 희망을 담은 두 권의 그림책이 미국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마시 콜린과 에런 베커의 “겨울 봄 여름 가을, 생명”과 션 루빈의 “바로 이 나무”입니다. 같은 소재를 다뤘지만 두 그림책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겨울 봄 여름 가을, 생명”은 이 나무를 보며 살아가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바로 이나무”는 희생자이자 생존자로서 나무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전합니다. 또 한 가지 차이가 있는데 두 그림책이 Survivor Tree를 조금 다르게 번역했습니다. 전자는 ‘생명의 나무’로, 후자는 ‘생존자 나무’로. 여러분은 어떤 게 더 마음에 드시나요?

※ 같은 소재를 다뤘고 이야기는 위에 소개한 내용과 동일합니다. 그래서 그림책별로 자세한 소개가 오히려 여러분들의 그림책 감상을 방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작가들의 후기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겨울 봄 여름 가을, 생명

겨울 봄 여름 가을, 생명

(원제: Survivor Tree)
마시 콜린 | 그림 에런 베커 | 옮김 정회성 | 웅진주니어
(2022/10/14)

“머나먼 여행”, “비밀의 문”, “끝없는 여행”, 여행 3부작의 에런 베커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에런 베커가 그렸다면 글 없이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일 거라는 뜻입니다. 에런 베커의 그림 좋아하는 분들은 아마도 이미 구입하셨을 테구요.

글쓴이 마시 콜린의 말

나는 캘러리 배나무(콩배나무)의 수명이 20년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어요. 생명의 나무는 콘크리트 더미 밑에 깔려 있을 때 이미 충분한 수명을 누린 상태였지요. 하지만 살아 남았습니다. 그날은 세상이 무너져 내린 것 같은 날이었지만, 우리는 살아남았고 도시도 원래의 색깔을 되찾았어요.

그린이 에런 베커의 말

몇 년 전 나는 이 책의 그림 작업을 위해 9⋅11 기념관을 방문했어요. 스케치북에는 그림이, 카메라에는 사진이, 내 머릿속에는 아이디어가 가득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전히 무언가 부족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는 아침 식사를 하는 대신 묘목장으로 향했지요. 예고도 없이 찾아온 내 앞에 10년째 우뚝 선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생명의 나무가 있었어요.

나무를 본 순간 나무가 거쳐 온 장소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가 살아남은 곳, 보살핌을 받은 곳, 새로운 뿌리가 돋아난 곳들을요. 묘목장에서 보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내 작품에 큰 영감을 주었지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이 나무 이야기는 가장 어두운 시기에도 생명은 꺼지지 않고 희망의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바로 이 나무

바로 이 나무

(원제: This Very Tree)
글/그림 션 루빈 | 옮김 신형건 | 보물창고
(2022/05/20)

션 루빈은 “이웃집 공룡 볼리바르”라는 두툼한(약 200쪽) 그림책으로 가온빛 독자들에게 처음 소개했던 작가입니다. 서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을 한 번쯤 돌아보게 해 주는 그림책이었는데, 어떤 면에서는 생존자 나무를 다른 시민들과 똑같은 생존자, 이웃으로 바라보며 쓴 “바로 이 나무”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션 루빈의 말

생존자 나무처럼, 처음엔 나도 이 특별한 장소와 순간으로 돌아가기를 망설였습니다. 나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후, 나는 이 나무가 부러지고 치유될 수 있는 몸과 팔다리를 가졌으며, 비극으로 인해 거의 끝날 뻔했던 약 80년의 기대 수명을 지닌, 인간과 매우 비슷한 비범한 생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생존자 나무는 죽음에 맞닥뜨리고도 어떻게든 극복해 낸 생명체로서, 그저 멀쩡한 게 아니라 기어코 살아남아서 계속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나무는 자신 내면의 힘과 지역 동동체의 보살핌과 지원을 통해 치유되었지요. 나는 생존자 나무를 고향 친구이자 이웃으로 여기게 되었어요.


※ Survivor Tree의 수종은 ‘캘러리 배나무(콩배나무)’입니다. 콩배나무는 잎과 열매가 배나무와 똑 닮았다고 합니다. 다만 배나무보다 꽃과 잎이 작고 열매는 이름 그대로 콩알만큼 작아서 콩배나무라고 부른대요. 콩배나무 열매를 ‘똘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권정생 선생님이 쓰고 김용철 작가가 그린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의 주인공이 바로 이 콩배나무 열매였네요.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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