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

(원제 : Der Wolf und Die Sieben Geisslein)
그림 형제 | 그림 펠릭스 호프만 | 옮김 김재혁 | 비룡소
(발행 : 2000/07/10)

※ 1957년 초판 출간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언제였을까요? 엄마에게 이야기로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책으로 읽어주었던 것 같기도 하고 만화영화로 본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이야기처럼 느껴질만큼 친근하고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엄마가 없는 틈을 타 집으로 찾아가 아이들을 속여 문을 열게 하는 앞부분은 우리 옛이야기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많이 비슷하지요. 약자들이 힘을 합쳐 무시무시한 존재를 물리친다는 맥락에서 보면 우리 옛이야기 “팥죽할멈과 호랑이”와 비슷하구요.

그림 형제 민담집에 들어있는 이 이야기는 많은 그림책 작가들에 의해 재탄생 되었는데요. 오늘 소개하는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는 섬세한 석판화 그림으로 이야기를 차분하고 깊이 있게 그려낸 펠릭스 호프만의 1957년 작품입니다.

옛날에 엄마염소와 아기염소 일곱 마리가 살았습니다. 엄마염소는 아기염소들을 무척 사랑했어요. 다른 어떤 엄마들보다도 말이에요.

엄마 염소의 보호 아래 초록 풀밭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아기 염소들, 그 목가적 풍경이 참으로 평화로워 보입니다. 엄마가 곁에 있는 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

엄마염소가 먹을 것을 구하러 숲으로 떠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늑대가 아기염소들을 찾아갑니다. 늑대의 거친 목소리를 들은 아기염소들은 속지 않았어요. 그러자 늑대는 거친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잡화상에서 산 커다란 분필을 삼키고 다시 아기염소들을 찾아갔어요.

“어서 문 열어라, 얘들아, 엄마가 왔다.
너희들에게 줄 선물도 가지고 왔단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커먼 앞발이 문제가 되었지요. 늑대는 빵집 주인을 속여 거친 앞발에 밀가루 반죽을 바르고 방앗간 주인을 위협해 밀가루를 뿌린 후 다시 아기염소들을 찾아갔어요.

작정하고 속이려드는 늑대를 당할 방법은 없었어요. 늑대의 말을 믿은 아기염소들이 문을 활짝 열자,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

늑대가 뛰어들어왔어요!

펠릭스 호프만은 문이 열리기 직전 장면과 활짝 열린 문으로 늑대가 뛰어드는 장면으로 나누어 이야기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어요. 늑대가 내민 하얀 발을 보면서 안심하고 문 손잡이에 손을 대고 있는 천진난만한 표정의 아기염소를 보고 있자면 저절로 긴장하게 됩니다. 아이들에 따라서는 이 장면에서 ‘안된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죠. 늑대가 집안으로 뛰어드는 장면은 ‘늑대였어요!’라는 짧은 문장의 글자를 크게 키워 무시무시한 순간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커다란 늑대와 혼비백산 도망치는 아기염소들, 한 화면 속에서 대립하는 두 존재는 선과 악을 더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늑대는 여기저기 다급하게 숨은 아기염소를 찾아내 모두 꿀꺽 삼켰어요. 단 한 마리 벽시계에 숨은 막내 아기염소만 빼고요. 칠흑 같은 절망 속 유일한 희망의 상징 막내 아기 염소, 집으로 돌아와 망연자실 눈물을 흘리던 엄마는 막내 아기염소와 함께 늑대를 찾아 나섭니다.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

벌렁 드러누워 잠든 늑대의 배를 갈라 아기염소들을 모두 구한 엄마는 빈 배를 돌멩이로 채우고 다시 늑대의 배를 꿰매었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한숨 잘 자고 일어난 늑대는 물을 마시러 우물가에 갔다가 그만 풍덩! 그러고 보니 악을 상징하는 늑대가 물에 빠져 죽는다는 결말도 “팥죽할멈과 호랑이”와 유사하군요. 남을 속이고 헤치는 사악한 마음을 깨끗한 물로 정화하라는 의미가 담긴 모양입니다.

아기염소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그렇게 영원히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을까요? 글쎄요, 인생 어느 순간에든 불쑥 늑대가 찾아오지 않았을까요? 그것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변장하고 찾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죠. 고난을 통해 배우고 그렇게 성장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 인생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시대와 환경이 바뀌어도 여전히 옛이야기가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혜롭고 강인해 보이는 엄마염소 모습, 호기심 많은 아기염소들의 모습, 늑대가 변장하기 위해 찾아가는 시내 가게 풍경 등 그림책 곳곳 펠릭스 호프만의 아름다운 석판화 그림을 감상하며 옛이야기를 즐겨 보세요.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 곳곳에 우리의 현실이 그대로 녹아있어요.


내 오랜 그림책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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