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을 수 없는 아이

눈을 감을 수 없는 아이

(원제 : Barnet Som Inte Kunde Blunda)
글/그림 안나 회그룬드 | 옮김 이유진 | 위고
(2021/06/25)


기이하고 독특한 표지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책 “눈을 감을 수 없는 아이”는 스웨덴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작가 안나 회그룬드의 작품입니다. 처음 이 작가를 알게 된 건 사춘기 소녀의 자아 탐구를 다룬 “나에 관한 연구”란 책을 통해서였어요. 글과 그림이 너무나 강렬했던 이 책을 읽고 안나 회그룬드의 작품을 찾고 또 찾아 읽었습니다.

그림 작가로 참여한 “휘파람 할아버지”, “울타리 너머 아프리카”, “고고와 하얀 아이” 등의 작품과 달리 글과 그림을 모두 담당한 그녀의 책은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집니다. 이 그림책 “눈을 감을 수 없는 아이”를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어요. ‘오!’하고 읽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오?’ 했던 느낌이었달까요?

눈을 감을 수 없는 아이

표지 안쪽 가득 밤하늘이 펼쳐져 있습니다. 동그랗게 두 눈이 뚫려있는 자리가 밤하늘 배경 속에 나란히 자리 잡은 쌍둥이 별처럼 느껴집니다. 똑같은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누군가는 캄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별이 밝게 빛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두려움, 무서움, 공허함을 느낄 수 있는가 하면 아름다움, 찬란함, 영원함을 느낄 수도 있구요. 세상은 우리가 본 만큼 볼 수 있고 느낀 것만큼 느낄 수 있으니까요.

눈을 감을 수 없는 아이쓰레기 사이에서 먹을 것을 찾아다니던 개가 버려진 여자아이를 발견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개와 눈을 감을 수 없어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아이, 둘은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갔어요. 둘이 찾아낸 것을 모두 똑같이 나누면서…

하지만 그곳은 눈을 감을 수 없는 아이가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힘든 환경이었어요. 눈을 뜬 채 잠을 자던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는 일이 잦아지자 개는 아이에게 좀 더 안정된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눈을 감을 수 없는 아이

도시에서 아이가 새롭게 하게 된 일은 건물 유리창을 닦는 일. 위태위태해 보이는 줄에 매달려 하루 종일 건물 유리창을 닦는 아이 모습은 감을 수 없어 시리고 아픈 자신의 두 눈을 닦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일은 아이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 주었어요. 훤하게 보이는 유리 창 안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너무나 슬퍼 보였거든요.

“모든 걸 보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요.”

‘사마귀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개의 말에 아이는 마주치는 이들에게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마귀’의 존재를 물었지만 다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어요. 이마에 무언가를 달고 기괴한 모습으로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현대인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습니다. 눈을 떴지만 뜨지 못한 사람들, 정말 보아야 할 것들을 놓치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행정관조차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모든 걸 보는 걸 견딜 수 없다’는 아이 말에 행정관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하수구 관리를 하라’며 보직을 변경해 주었을 뿐이니까요. ‘모든 건 행정적 절차에 따랐을 뿐입니다.’ 이 공허한 메아리 같은 말이 그림책 속에서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눈을 감을 수 없는 아이

컴컴한 하수구 속으로 내려갔을 때 아이는 비로소 눈이 편하다고 느낍니다. 그곳에서 만난 세피아는 눈을 감고 싶다는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어요.

“너는 이미 눈을 감을 수 있어. 네가 모르고 있을 뿐이지.
눈을 감으면 새로운 것이 보이지.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모든 게 달리 보일 거야.”

혼란에 빠져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있던 아이는 지상에 두고 온 초록색 실을 따라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자신을 찾으러 온 개의 손을 잡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빛 속에서도 어둠 속에서도 혼란에 빠진 아이의 모습은 자아를 찾아 끝없이 탐색하고 방황하는 우리들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아이가 긴 시간의 방황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 개의 사랑이었어요. 둘 사이에 놓인 초록색 실은 신뢰와 사랑, 희망을 상징하고 있어요.

방황을 끝낸 아이는 비로소 잠들 때 눈을 감을 수 있었어요. 어쩌면 자신을 버린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낯설고 불안한 상황이 아이의 두 눈을 감을 수 없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쓰레기 더미 근처에서 모든 걸 똑같이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아이와 개. 아이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노트에 무언가를 기록하는 동안 앞이 보이지 않는 개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또 다른 생명을 찾아냅니다. 처음 회색빛 우울한 장소였던 그곳은 이제 따스한 빛깔과 온기로 가득해 보입니다. 무엇이 이곳에 색채를 만들어 낸 것일까요?

눈을 감을 수 없어 모든 것을 보아야만 하는 아이 눈에 비친 세상은 작가가 우리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작가는 끝까지 정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희망이건 비정한 현실에 맞닥뜨린 절망이건 그림책을 읽는 우리들의 몫으로 남겨두었지요.

척박하고 막막한 현실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낸 그림책 “눈을 감을 수 없는 아이”, 오늘 나는 무얼 보고 무엇을 찾아내며 살고 있나? 나의 인생 노트에 무엇을 기록하면서 오늘을 보냈나? 세상을 제대로 보면서 살고 있나? 그림책이 수많은 질문을 내게 건넵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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