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학교에 가던 날, 처음 가족과 멀리 떨어졌던 날, 처음 직장에 가던 날, 새로운 일을 시작하던 날…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던 그 순간들을 떠올려 봅니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그 느낌은 또 어땠을까요?

문밖은 여전히 찬바람 쌩쌩 불고 있지만 그래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오겠지요. 새봄을 기다리면서 무언가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모든 분들을 위해 마련한 ‘시작하는 이를 위한 그림책’. 무언가 새로 시작할 때 설렘도 있지만 혼란과 불안감도 함께 따르기 마련이지요. 그림책으로 마음 따뜻하게 충전하고 뚜벅뚜벅 힘차게 걸어가시길! 시작하는 그 길에 행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아기

새해 아기

권정생 | 그림 우영 | 단비
(2021/07/20)

한 송이 꽃이 피어나기 위해서는 햇살과 바람, 물과 거름… 수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여기 이 순간 존재할 수 있는 건 수많은 존재들의 사랑과 관심 보살핌 덕분이지요. “새해 아기”는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꿈꾸셨던 권정생 선생님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이에요.

떡갈나무숲 사이 양지바른 잔디밭에 놓인 베갯덩이 같기도 하고 돌덩이 같기도 한 두루뭉수리를 본 동물 친구들은 그것의 정체가 궁금해 모두 한자리에 모여 떠들기 시작했어요. 무얼까? 살짝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그때 하느님이 나타나 두루뭉수리를 쓰다듬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두루뭉수리가 예쁜 아기가 되기 시작했어요. 아기곰 같은 머리칼, 옥토끼 같은 눈, 다람쥐 같은 코, 하느님을 닮은 입… 하느님은 그 아기를 세상으로 내보내기로 합니다.

새해 아기

“너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이 되어라.
그래서 온 누리에 향기를 퍼뜨려라.”

꽃사슴이 끄는 꽃수레 타고 꽃길을 달려 모두의 축복 속에 세상으로 온 아기, ‘왕!’ 울음을 터뜨리며 이 세상에 온 것을 알렸답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시작이에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여러분의 시작이기도 하구요. 별 같고 꽃 같은 우리의 시작. 나는 모두의 지극한 사랑으로 품어낸 아름다운 기적입니다. 우리는 모두 소중한 새해 아기입니다.

“새해 아기”는 처음 1974년 ‘여성동아’ 1월 호에 실렸던 동화입니다. 2016년 단비출판사에서 권정생 동화집 1호 “새해 아기”란 제목으로 빌배산에 눈이 내리던 날, 외딴집 감나무 작은 잎사귀, 밀짚잠자리, 새해 아기까지 네 편의 동화를 묶어 출간했었구요. 그중 한 편인 “새해 아기”가 2021년 단행본 그림책으로 새로이 출간되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 존중으로 가득한 권정생 선생님의 담백한 글이 마음을 따사롭게 어루만져 줍니다. 따뜻한 노란빛으로 가득한 햇살 같은 우영 작가의 그림이 마음을 다독여줍니다. 내가 세상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정성과 축복, 소망이 함께했는지 상상해 보세요. 우리는 있는 그대로 지금 이대로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존재입니다.


은행나무 열매

은행나무 열매

미야자와 겐지 | 그림 오이카와 겐지 | 옮김 박종진 | 여유당
(2020/11/25)

권정생 선생님의 “새해 아기”가 우리의 탄생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그림책이라면 미야자와 겐지의 “은행나무 열매”는 은행나무를 어머니로 의인화해 열매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순간을 아름답게 그려낸 그림책입니다. 성장과 독립, 사람 모습이 된 아기가 꽃사슴 마을과 이별하고 모두의 축복 속에 이 세상에 온 것과 잘 자란 은행나무 열매가 엄마 나무를 떠나 독립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은 은행나무 열매들이 엄마 나무를 떠나 새 출발 하는 날입니다. 천명의 은행나무 아이들이 한꺼번에 떠날 채비를 하느라 새벽부터 시끌시끌합니다. 어머니는 이별이 너무 슬퍼 노란 황금빛 이파리를 모두 떨구었어요.

은행나무 열매

동쪽 하늘이 하얗게 밝아오자 은행나무 아이들은 용기를 냈어요. 다 같이 한꺼번에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렸죠. 엄마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면서. 공중에서 찬란하게 떨어지는 올망졸망 노란 은행나무 열매들, 노오란 햇살 같은 그 열매들은 세상 더없이 소중하게 품고 키워온 엄마 나무의 눈물이며 지극한 사랑입니다.

해님은 타오르는 보석처럼 동쪽 하늘에 걸려
슬퍼하는 어머니 나무와 여행을 떠난 아이들에게
온 힘을 다해 눈부신 빛을 던져 주고 있었습니다.

만남과 이별은 살아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과정입니다. 자연의 섭리이기도 하구요. 시작은 언제나 끝을 향해 달려가고 끝은 또 다른 시작을 낳지요.

여행 떠나는 열매들을 향해 북풍이 미소와 함께 건네는 인사가 다정합니다. 아기 열매들이 모두 떠난 빈자리의 공허함을 노란 햇살로 가득 채워주는 해님의 마음이 따뜻합니다. 모두 떠난 뒤, 빈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작은 외투 한 벌이 여운을 남깁니다. 은행나무 열매 중 한 아이가 가슴 졸이며 찾던 외투, 어쩌면 엄마는 그 남은 외투마저도 바람에게 부탁해 멀리멀리 날려 보내주지 않았을까요? 먼 길 떠난 우리 아기 춥지 않게 꼭 좀 전해 달라고.

“은행나무 열매”는 삶과 죽음, 철학적 사색과 질문이 가득 담긴 작품을 많이 남긴 일본의 국민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입니다. 우리에게는 은하철도 999의 원작 동화인 “은하철도의 밤”, “비에도 지지 않고”, “첼로 켜는 고슈”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죠.

새 출발을 앞둔 은행나무 열매들의 기대와 불안, 설렘과 두려움, 희망과 슬픔 가득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첫 시작의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불안과 두려움을 떨치고 첫 발자국을 떼어내는 데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사랑과 응원이 가장 절실한 순간이기도 하지요.


시작해 봐! 너답게

시작해 봐! 너답게

(원제 : Be You!)
글/그림 피터 H. 레이놀즈 | 옮김 김지은 | 웅진주니어
(2021/03/25)

많이 들어봤지만 참 어려운 말입니다. 나답게, 너답게… 나다운 건 뭘까? 어떤 게 나를 더 나답게 만들까?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 질문이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우선 이 그림책을 펼쳐 보세요. 아! 그래그래 맞아, 나 그랬지,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많은 것을 갖고
태어났단다.

‘활기찬, 통찰력 있는, 너그러운, 겸손한, 용감한, 자기중심의, 친절한, 철학적인, 예술적인, 공감하는, 슬기로운, 존경할 만한, 사랑받는, 쾌활한, 평화로운, 똑똑한, 바른, 생각이 깊은, 잘 도와주는, 창조적인, 거침없는, 잘 어울리는 모험적인, 창의적인, 활동적인, 신중한, 준비된, 다정한, 놀라운, 끈기 있는, 분위기 있는, 열려 있는 재미있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단어들이 아기 주변에서 빛처럼 반짝이고 있습니다. 이미 모든 걸 갖고 태어난 아기, 준비된 아기가 바로 ‘나’예요. 그걸 발견만 하면 되지요. ^^

‘너’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쓴 이 글을 읽는 순간 ‘너’는 ‘나’가 되어 자연스럽게 나에게 전해지는 편지가 됩니다.

시작해 봐! 너답게

그리고 이 넓은 세상을 여행하면서
이것만은 꼭 기억해 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항상……

널 사랑한다는 걸.

언제나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는 너, 호기심도 많고, 모험도 즐길 줄 아는 끈기 있고 친절하고 이해심 많은 너. 두려움에 주춤거리고, 도전을 앞두고 잠시 망설일지 몰라도 네 곁에는 너를 사랑하고 항상 너를 응원하는 우리가 있음을 잊지 말고 살아가란 당부에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든든히 먹고 불끈 용기가 치솟는 기분입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전하는 따뜻한 응원이자 아름다운 선물 같은 그림책 “시작해 봐! 너답게”, 나는 나다울 때 가장 빛납니다. 이미 그 빛은 내 안에 담겨있어요. 피터 레이놀즈가 아름다운 글과 그림으로 전하는 메시지가 커다란 울림이 되어 내 안에서 따뜻하게 메아리칩니다.


같이 읽어 보세요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그림책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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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슬기
2022/02/18 10:50

이미 모든걸 갖고 태어난 아기, 준비된 아기가 바로 ‘나’예요 라니 ㅠㅠ 너무 위로가 되고 힘나는 말이네요. 어른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모든게 충분했던 시절과 멀어지는 기분인데,, 정말 근본적인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괜시리 엄마아빠가 보고싶어지네요 ㅎㅎ

서 책
2023/04/28 09:41

하루하루가 새로운 시작이라는 걸 오늘 새삼 느껴보면서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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