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터널

(원제 : The Tunnel)
글/그림 앤서니 브라운 | 옮김 장미란 | 논장
(2002/09/15)

※ 1989년 초판 출간


짓궂고 호기심 많고 활동적인 걸 좋아하는 오빠와 조용하면서 겁 많고 책을 좋아하는 여동생. 터널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입니다. 단박에 ‘이거 우리 집 이야기인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많을 것 같습니다. 대조적인 성격을 가진 두 아이를 통해 앤서니 브라운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요?

터널

비슷한 데가 하나도 없는 모든 게 딴판인 오빠와 여동생이 있었어요. 동생은 자기 방에서 책을 읽거나 공상을 하는 걸 좋아했고 오빠는 밖으로 나가 뛰어노는 걸 좋아했죠. 오빠는 가끔 늑대 가면을 쓰고  동생을 놀라게 하곤 했어요.

동생의 빨간 외투가 걸린 방으로 늑대 가면을 쓰고 살금살금 기어 오는 오빠, 동생 방에는 빨간 모자와 늑대가 만나는 장면이 담긴 그림 액자가 걸려있어요. 빨간 모자와 늑대는 서로를 잡아먹거나 혹은 물리칠뿐 양립할 수는 없는 존재입니다. 두 남매는 그런 사이였어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함께 어울릴 줄 모르는. 이 한 장면이 두 아이의 현재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굴만 마주하면 언제나 티격태격, 어느 날 보다 못한 엄마가 화를 내며 둘을 집 밖으로 쫓아냈어요.

물론 밖에서도 둘은 티격태격, 오빠는 동생이 겁쟁이라며 투덜거렸고 동생은 오빠 때문에 밖으로 쫓겨난 상황에 짜증을 냈어요.

터널

오누이는 잠시 후 커다란 변환점을 맞게 됩니다. 터널을 발견한 오빠가 혼자 터널 속으로 들어간 후 나오지 않자 동생은 오빠를 찾으러 터널 속으로 들어갔어요. 방금 전 마녀나 괴물, 뭐가 있을지 모른다며 무서워했던 그 터널 속으로.

네 컷으로 분할해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동생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작은 프레임 속에서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어두운 터널 바닥을 기어가는 동생의 모습은 사뭇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조마조마하게 느껴지지요.

이제 동생은 터널을 통과해 다른 세계로 들어왔습니다. 오빠가 앞서 지나갔던 곳, 이전까지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던 곳으로.

터널 반대편에는 고요한 숲이 있었어요. 오빠는 어디에도 보이지도 않았어요.

당장에라도 돌아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지요.
혼자 돌아가 버리면, 오빠는 어떻게 될까요?

두렵지만 오빠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큽니다. 겁에 질린 동생은 마구 뛰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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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두려움을 낳습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그대로 숲속에 펼쳐집니다. 커다란 나무는 금방이라도 살아움직일 것만 같고 사나운 동물들이 동생을 덮칠 것 같습니다. 두려움이 가장 극대화되는 순간 풀 화면으로 동생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어요. 악몽을 꾸면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소리가 나지 않는 순간을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달리고 또 달리고 그렇게 달리다 잠시 멈추어 선 순간 동생은 오빠를 만났어요. 돌처럼 굳어버린 오빠를. 터널

동생은 차갑고 딱딱한 돌을 와락 껴안고 울었어요.
그러자 돌은 조금씩 색깔이 변하면서 부드럽고 따스해졌어요.

싸우고 미워해도 가족은 그런 사이입니다.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세상 끝까지라도 달려갈 수 있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기꺼이 안아줄 수 있는 사이.

네 컷으로 분할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이 장면에 오래오래 눈길이 머물렀어요. 돌로 차갑게 변한 오빠처럼 주변 배경도 무겁고 음울한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이 세계에서 생기를 가지고 있는 존재는 오직 동생 로즈뿐이에요. 동생이 와락 오빠를 껴안는 순간 그 온기에 저주가 풀리 듯 어둠이 사르르 녹아내립니다. 주변이 조금씩 밝아지면서 따스한 초록색을 되찾습니다. 세상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봄이 찾아온 것처럼요. 마침내 오빠가 온전히 돌아와 동생과 마주한 순간 빛으로 가득한 초록색 풀밭이 두 아이를 둘러싸고 있어요. 하얗게 피어난 데이지 꽃이 두 아이를 둥글게 에워싸 둘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터널은 분리되었던 오빠와 동생을 하나로 합치는 길이 됩니다. 겁 많은 동생을 용감하고 결단력 있는 아이로 만들어주고, 무모하고 거친 오빠를 부드럽게 변화시키는 길이 됩니다. 이해와 사랑, 소통의 연결 통로가 된 것이지요. 마주 볼 줄 몰랐던 오누이는 비로소 서로를 바라봅니다.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습니다.

뒷면지에 동생이 즐겨보던 동화책이 오빠의 축구공과 나란히 놓여있어요.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이해하면서 성장해 갈 두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다 보니 괜스레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자라면서 우리가 지나쳐 왔을 수많은 터널과 길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 마음을 그려봅니다.


내 오랜 그림책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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