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생각할 때면 거칠고 푸석했던 할머니의 손이 제일 많이 떠오릅니다. 잠 안 오는 밤, 할머니가 거친 손으로 등 몇 번 쓸어주시면 어느새 아늑하고 포근한 꿈나라로 떠나곤 했죠. 주름진 손으로 꽁꽁 뭉쳐 입에 쏙 넣어 주시던 숨 턱턱 막히던 할머니의 콩고물 밥, 제가 만든 콩고물 밥에선 왜 그 맛이 나지 않는 걸까요? 이쁘다 쓰다듬어 주시던 손, 좋은 거 먼저 챙겨 주시던 손, 나쁜 거 막아주시던 손, 할머니의 손…

할머니가 등장하는 그림책을 만날 때마다 따뜻하면서도 단호하고 자상하면서도 까칠했던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곤 합니다. 손주들 앞에선 어느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당신이지만 마음 한구석엔 여린 소녀를 품고 있는 할머니, 화려한 꽃무늬 옷을 사랑하는 할머니, 모두 우리 할머니입니다.


막두

막두

글/그림 정희선 | 이야기꽃
(발행 : 2019/04/08)

★ 2019 가온빛 추천 BEST 101 선정작

“막두”는 전쟁통에 부산으로 밀려 내려와 자갈치 시장에서 육십 년 넘게 생선 파는 일을 해온 막두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얼핏 보기엔 억척스러워 보이지만 처지가 딱한 사람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속정 깊은 할머니, 막두 할매예요.

막두

“커피야! 니 바지 색깔 쥑인다.”
“호호호, 아지매 보는 눈이 있네. 오늘 기분 한번 내 봤지요.”
“시끄럽다, 가시내야. 니 궁디에서 꽃 튀어나오겠다.”

빨간 꽃잎 차르르 휘날릴 것 같은 샛노란 바지를 입은 커피 할머니의 몸짓이 재밌어 그림책 속 할매들과 같이 깔깔 웃습니다. 누구하고도 어울려 금방 친구가 되지만 마음에 없는 말은 절대 하지 못하는 솔직한 성격의 자갈치 시장 할매들. 주거니 받거니 오가는 정겨운 사투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아요. 시끌시끌 떠들썩한 시장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막두

막두 할매는 열 살 때 피란 길에 올랐다 부모님을 잃어버렸어요. 혹시라도 헤어지게 되면 부산 영도다리로 오라는 엄마 말에 걷고 또 걸어 부산까지 찾아갔지만 어린 막두가 그날 만난 건 다리 위 수많은 인파, 그리고 거대한 영도다리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들어올려지는 모습이었어요. 거대한 벽처럼 우뚝 선 다리의 모습은 마치 막두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죠.

언젠가는 부모님을 꼭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 속에 모진 세월을 견뎌낸 막두, 그녀는 틈날 때마다 다리를 찾아갔지만 종소리가 울리면 달아나듯 시장으로 돌아왔어요. 두렵고 막막했던 지난 기억에 영도다리가 들어 올려지는 모습을 다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막두

아이였던 막두가 할매가 될 만큼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영도 다리도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어요. 더 이상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는 자갈치 시장 왕 언니 막두 할매, 할매는 티브이에서 그런 영도다리가 다시 개통된다는 소식을 접하며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렇게 무서울까 하고.

그때처럼 영도다리에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어요. 땡그랑땡그랑 종소리를 울리며 다리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할매는 이제 무섭지 않았어요. 눈을 크게 뜨고는 끄덕끄덕 올라가는 다리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어요.

“오마니, 아바이. 대단하지요?
막두도 저만치로 대단하게 살았심더.”

막막함으로 남아있던 영도다리와 함께 늙어간 주름 성성한 막두 할매가 새로 개통된 영도다리를 마주하며 부모님을 떠올리는모습에 코끝이 찡해집니다. 굴곡진 현대사를 헤쳐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긴 세월, 모진 풍랑 홀로 헤치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막두, 알알이 가슴에 묻어놓은 채 못다한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까요?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어린 막두에서 할매가 된 이땅의 모든 막두가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온 마음 다해 빌어봅니다.


빨강이들

빨강이들

글/그림 조혜란 | 사계절
(발행 : 2019/11/15)

★ 2019 가온빛 추천 BEST 101 선정작

“빨강이들”은 할머니들의 사랑스러운 단풍 여행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이에요. 붉은 단풍만큼이나 곱고 여린 우리 할머니들, 그들의 행복한 여행이 한 땀 한 땀 정성 가득한 바느질로 어여쁘게 그려져 있어요.

빨강이들

할머니들이 사는 동네에 빨간 버스가 찾아왔어요. 움츠린 할머니들 표정을 보고 있자니 왠지 오늘 여행을 제대로들 하실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앞서네요. 빨간 버스를 타고 출발할 때도 할머니들 표정은 그저 시큰둥… 하지만 휴게소에 들러 신나는 음악도 즐기고 오르막 내리막 먼 길을 달려가는 동안 할머니들 얼굴에 차츰 생기가 돌기 시작해요.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울긋불긋 고운 빛깔로 물든 붉은 산. 버스도 빨갛고 산도 빨갛고, 그 산을 바라보는 할머니들 마음도 붉게 타오릅니다.

빨강이들

해마다 수십 년 넘게 보았을 단풍인데 그 절경은 보아도 보아도 신기합니다. 나오니까 이리 좋습니다. 즐거운 단풍 나들이를 끝내고 돌아올 때 할머니들은 나무들이 추울까 봐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나무를 덮어주고는 내복 바람으로 돌아왔어요. 단풍잎 대신 할머니들의 옷이 바람에 펄럭입니다.

“올겨울을 잘 넘겨야 해.”

추운 겨울, 지난가을 행복한 기억이 할머니들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올겨울 무사히 잘 넘기라고 나무가 보내준 선물이에요. 저마다의 가슴에 알록달록 고운 빛깔 나뭇잎으로 가득한 할머니들, 할머니들의 옷이 알록달록 화려한 이유입니다.

조혜란 작가가 “상추씨”, “노랑이들”에 이어 정성 가득한 바느질로 완성한 바느질 그림책 “빨강이들”, 겨울 건강하게 나신 할머니들, 올봄 알록달록 화려한 꽃 나들이 가시겠죠. 모두들 건강하세요~ ^^


벚꽃 한 송이

벚꽃 한 송이

글/그림 이진영 | 대교북스주니어
(발행 : 2019/04/05)

연분홍 벚꽃은 설렘입니다. 누구를 만날까, 어디를 갈까 괜스레 마음이 분주해지고 들떠버리죠. 할머니의 오늘도 그래요. 해마다 벚꽃이 활짝 핀 날, 할머니는 초등학교적 친구들을 만나기로 약속했거든요. 이런저런 옷들을 고르며 분주한 아침을 보낸 할머니가 집을 나섰어요.벚꽃 한 송이

벚꽃으로 화사해진 거리, 벚꽃처럼 화사한 옷으로 갈아입은 할머니, 발걸음도 마음처럼 가볍습니다. 어린 시절 다니던 학교에서 친구들과 옛 추억을 떠올릴 때는 마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어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할머니는 다시 버스에 올랐어요.

벚꽃 한 송이

할머니는 오늘 몸이 아파 반창회에 나오지 못한 단짝 친구를 만나러 갔어요. 요양원 가는 길 벚꽃은 더욱 화려합니다. 할머니는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우며  친구 마음을 위로해 주셨어요.

벚꽃이 바람에 다 져요.
“피는 모습도 곱지만 지는 모습은 더 찬란하지?”

“지는 꽃잎엔 피어 있던 모습까지 다 담겨 있거든.”

할머니 이야기 속에 삶의 진리가 가득 베여있습니다. 봄이면 곱게 피어나는 벚꽃은 누군가의 추억이고 그리움이며 행복이고 인생입니다.


따르릉 할머니, 어디 가세요?

따르릉 할머니, 어디 가세요?

글/그림 김유경 | 씨드북
(발행 : 2019/06/24)

따르릉 할머니, 어디 가세요?

따르릉 할머니는 아침부터 아주 바빠요. 할머니가 지나가는 길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들이 언제나 한가득이거든요. 오늘 아침에도 빨간 자전거로 학교에 늦은 옆집 수호를 태워다 주었고 아픈 길고양이를 동물 병원에 보내주었죠. 그 후로도 꽃 전해 주기, 헌 책 가져다주기…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동네 구석구석 어디든 찾아나서는 할머니 덕분에 온 동네에 활기가 넘칩니다.

할머니 열정을 상징하듯 할머니 자전거도 빨간색 헬멧도 빨간색입니다.

따르릉 할머니, 어디 가세요?

할머니의 바쁜 하루가 그렇게 흘러갑니다. 따르릉 할머니가 자전거로 전해주는 건 사람들 사이를 잇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마음과 마음을 이어 온 동네로 이어질 거예요.

누구와도 금세 친구가 되는 할머니, 세상 모든 일에 귀 기울이고 척척 손 벗고 먼저 나서는 할머니의 자상한 모습이 담겨있는 그림책 “따르릉, 할머니 어디 가세요?”, 할머니의 넉넉한 마음이 두 바퀴 자전거를 타고 흐릅니다. 우리 동네 인심 좋은 할머니 모습 같아 더욱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 함께 읽어 보세요 :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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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애
정신애
2020/02/26 10:21

태백에서의 강의 이후에 가온빛이 다시 보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책 입니다. 노인분들 프로그램 할때 읽어드려야 할것 같아요. 건강 조심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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