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든 아이
거울을 든 아이

(원제: Forvandlingen)
글/그림 안나 회글룬드 | 옮김 최선경 | 곰곰
(2022/09/30)


옛날 옛적이라는 전형적인 옛이야기 형식으로 시작하는 “거울을 든 아이”는 스웨덴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안나 회그룬드의 작품입니다. 가온빛에는 “눈을 감을 수 없는 아이” 한 권이 소개되어 있는데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나에 관한 연구”라는 책에서부터였습니다. 이후 안나 회그룬드의 전 작품을 모두 소장하고 있을 만큼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이 책은 세 자매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사악한 거인으로부터 아빠를 구해 온다는 엘사 베스코브의 고전 동화 “Tripp, Trapp, Trull”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어린 시절 안나 회그룬드는 엘사 베스코브가 쓴 “Tripp, Trapp, Trull” 이야기를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합니다.

거울을 든 아이 작은 섬에 아빠와 아이 단둘이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아빠는 사람들을 돌로 바꾸어 버리는 못된 거인을 물리치기 위해 어린 딸 혼자 남겨 두고 섬을 떠납니다. 혼자 남은 아이는 날마다 망가진 것들을 고치면서 아빠를 기다렸어요. 낮에는 작은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응시하고 저녁이 되면 거울 속 자신에게 말을 걸고는 괴물에 대해 생각하다 잠이 들었습니다.

아이에게 낮과 밤의 시간은 내면의 지혜와 힘을 키워나가는 인고의 시간을 뜻합니다. 나를 바로 보고 재정립하는 시간,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온전히 마주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아주 작은 파랑새 한 마리가 대신하는데 글에는 파랑새에 대한 언급이 없어요. 파랑새는 아이 가까이 있다가 잠시 사라지기도 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었다가 또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기도 하면서 아이와 함께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이의 심리 속 희망과 용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촛불마저 다 타버려 컴컴한 어둠 속에 갇히게 되자 아이는 거울과 칼을 들고 바닷가로 나갔어요. 작은 섬, 촛불이 꺼진 집과 타고 갈 배 한 척 없는 검은 밤바다는 고립이며 시련이고 두려움입니다.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한 바깥세상으로 나가느냐 안전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집안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아빠를 마냥 기다려야 하나, 이것은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끝없이 마주하고 선택해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거울과 칼을 들고 컴컴한 밤바다를 향하는 아이의 결연한 표정은 세상을 구원하겠다며 갑옷을 입고 온갖 무기를 가득 싣고 배를 타고 떠난 아빠보다 훨씬 더 당차 보입니다. 아빠에게 의존해 살던 아이는 섬을 벗어남으로써 어린아이였던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고 불확실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갑니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바다를 아이는 배 한 척 조차 없이 맨몸으로 건너갔어요.

거울을 든 아이

어둠만 계속될 것 같은 날들 속에서도 반드시 아침은 찾아옵니다. 햇살 아래 젖었던 옷을 말려 입고 아이는 숲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어갔어요.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두려움의 시작, 하지만 아이가 가는 길에는 언제나 파랑새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딘지 알 수 없는 어두운 숲길을 걷던 아이 앞에 작은 오두막이 나타납니다. 그곳에서 하룻밤 푹 쉬고 다시 떠날 채비를 하는 아이에게 오두막 주인 할머니는 우산 하나를 주면서 말했어요.

“거인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살아있는 모든 것이 돌로 변한다는 걸 명심해라!”

이야기 속에는 늘 이렇게 미완의 주인공을 돕는 인물이 등장하죠. 우산 만드는 할머니가 그런 존재입니다. 할머니를 대신할 험한 세상으로부터 방패막이가 될 우산을 건네주는 조력자, 불완전한 존재였던 주인공은 비로소 세상과 연결되면서 이렇게 온전한 능력을 하나씩 갖추게 됩니다.

거울, 칼, 우산을 들고 가던 아이는 메마른 땅에서 거인을 만납니다. 꽃한 송이, 풀 한포기 피어나지 못한, 흙과 돌 뿐인 적막한 땅, 생명이라고는 오직 아이 뿐인 그곳에서 거인을 만나자마자 할머니가 준 우산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어요. 그리고는 칼로 우산에 작은 구멍을 냈지요. 거인이 그 구멍을 들여다보는 순간 아이는 거울을 갖다 댔고 거울을 통해 자신의 눈과 마주친 거인은 그 자리에서 돌덩이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모든 것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긴 여정 끝에 아이는 다시 아빠를 만나게 됩니다. 세상을 구원하러 갔다 자신마저도 돌덩이로 변했던 아빠, 아이의 힘으로 아빠도 세상도 구원하게 되었습니다.

나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어야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수많은 비유와 상징으로 보여주는 책 “거울을 든 아이”, 아이만큼 작은 책이지만 내용만큼은 아이처럼 단단하고 깊은 책입니다.

안나 회그룬드는 아이에게 아무런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 것으로 누구나 책 속 주인공 아이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혼자인 것 같이 막막한 날들이 찾아와도 세상에는 늘 우리를 돕기 위한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둠이 있다면 빛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게 마련이죠. 우리에게 필요한 건 두렵고 무섭더라도  자신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용기, 거울을 마주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 함께 읽어 보세요: 바다로 간 페넬로페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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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책
2023/04/21 08:13

“나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어야”하는 대목에서 울림이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세상을 구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은 혹시
버려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꾸 돌아 보게 합니다. 책을 구해서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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