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전쟁에는 소위 명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이든 전쟁이 시작되면 다들 ‘정의 구현’ 또는 ‘평화 실현’이라 말하지만 어떤 구호와 명분을 내걸고 있더라도 그건 한낱 구실에 불과할 뿐이지요. 서로 자기가 옳고 자신이 선이라는 생각에서 시작되는 전쟁, 그 끝은 파멸뿐입니다.

전쟁 이야기를 다룬 세 권의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전쟁의 이유”는 사소한 실수에서 시작된 전쟁이 얼마나 무모하고 무의미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풀밭 뺏기 전쟁”은 풀밭을 놓고 토끼와 개들이 전쟁을 벌입니다. 개들이 사라진 풀밭에서 토끼는 행복할까요? 개똥을 서로 내 것이라고 우기며 싸우는 파리들의 요절복통 전쟁을 그린 “내 똥이라고!”,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에 마음 한구석 뜨끔해집니다.


전쟁의 이유

전쟁의 이유

(원제 : Die Schlacht Von Karlawatsch)
하인츠 야니쉬 | 그림 알료샤 블라우 | 옮김 김경연 | 풀빛
(발행 : 2021/02/05)

가시처럼 날카로운 모자와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싸우고 있어요. 그런데 상대를 향해 불끈 쥔 주먹이 너무 작아 어딘가 어색해 보입니다. 표정도 결의에 찼다기보다는 잔뜩 긴장한 것처럼 보이구요. 이 싸움,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된 걸까요?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거리, 한 사람이 지나치던 이의 강아지에게 실수로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리면서 갈등이 시작되었어요. 양쪽 편으로 갈라진 사람들이 빨간 깃발과 파란 깃발을 들고 몰려오는가 싶더니 이내 옷을 갈아입기 시작합니다. 한쪽은 빨간 옷, 한쪽은 파란 옷으로.

전쟁의 이유

사령관들의 지시에 따라 전쟁을 하러 나가는 사람들. 그런데 전쟁을 하러 나가는 사람들 표정은 어딘가 영혼이 빠져나간 듯 어색해 보입니다. 공격이 시작되자 상대를 향해 모자를 던지고 단추를 던지고 이에 질세라 상의를 던지고 하의를 던져댔어요. 무기가 되어 쏟아지는 모자, 단추, 상의, 바지, 양말… 그렇게 한동안 상대를 향한 사나운 공격이 계속되었죠.

그렇게 한동안 상대를 향해 모든 것을 쏟아붓자 이제 사람들에게는 속옷만 남습니다. 그러자 누가 적군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요.

전쟁의 이유

여전히 전투 지시를 내리느라 사령관들이 혈안이 되어있던 그때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어요.

“난 배가 고파!”
갑자기 팬티 바람의 한 군인이 외쳤어.
“나도! 나도! 나도!”

배고픈 이들이 모두 함께 소시지 냄새가 나는 쪽으로 달려갑니다. 둘씩 셋씩 짝지어 달려가는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어느 편으로도 가를 수가 없어요. 거기엔 그저 배고픈 이들이 있을 뿐이죠.

전쟁의 무의미함을 아주 잘 보여주는 그림책 “전쟁의 이유”, 눈앞의 전쟁보다 우선시 되는 건 지금 이 순간의 배고픔. 무기가 사라지고 배고픔이 찾아오니 인간 본연의 본성으로 돌아왔어요. 그림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작가들이 담고자 한 메시지가 강렬하게 전달됩니다.

끝끝내 전쟁을 포기하지 않은 사령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의 운명은 그림책으로 확인해 보세요.


풀밭 뺏기 전쟁

풀밭 뺏기 전쟁

(원제 : Stríðið Um Tað Góða Grasið)
글/그림 바두르 오스카르손 | 옮김 권루시안 | 진선아이
(발행 : 2020/08/20)

단순한 이야기, 간결한 선으로 많은 생각거리를 전달하는 작가 바두르 오스카르손이 그린 전쟁은 어떤 모습일까요?

풀밭을 지키고 있는 토끼를 본 노란 개와 파란 개는 무섭게 짖으며 토끼에게 사납게 덤벼들었어요. 개들은 토끼가 겁을 먹고 도망갈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토끼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어요.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며 개들이 토끼를 물려고 하자!

풀밭 뺏기 전쟁

토끼가 공중으로 뛰어오르더니 으르렁대며 개들에게 거대한 토끼 이빨을 모조리 드러냈어요. 놀란 개들은 다리가 흐물흐물해진 채로 도망을 쳐버렸지요.

토끼 이빨 무시무시하네요. 도대체 이 토끼의 정체가 무엇일까 궁금해지는 순간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갑니다. 토끼와 개들은 함께 사이좋게 풀밭을 공유하고 있었어요. 푸르고 보드랍고 촉촉한 풀밭이었지요. 그런데 토끼들은 여기저기 똥을 싸고 자신들을 쫓아다니는 개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개들을 쫓아낼 계략을 만들어냅니다. 접착제와 빨대로 가짜 이빨을 만들어 개들을 겁주어 쫓아내기로 했어요. 바로 아까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죠.

풀밭 뺏기 전쟁

개들이 사라진 풀밭은 온전히 토끼들의 소유가 되었어요. 편안하게 쉬고 즐겁게 뛰놀 수 있는 공간이 되었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토끼들은 풀밭이 예전의 그 풀밭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개들이 여기저기 똥을 누고 뛰놀던 그 풀밭과는 전혀 다른 느낌.

토끼들은 개들도 함께 있어야 좋은 풀밭이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니 좋은 풀밭을 되돌릴 방법은 단 하나, 개들을 다시 불러오는 것. 토끼는 개들을 다시 풀밭으로 불러올 수 있을까요? 풀밭은 푸르고 보드랍고 촉촉한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좋은 세상은 더불어 함께 어울려 살아갈 때 찾아온다는 것을 재미있게 알려주는 그림책 “풀밭 뺏기 전쟁”, 개성 있는 캐릭터, 거침없는 상황 전개, 신랄한 메시지, 그리고 바두르 오스카르손의 재치와 유머가 반짝반짝 돋보입니다.


내 똥이라고!

내 똥이라고!

(원제 : ¡Esta Caca Es Mía!)
글/그림 구스티 | 옮김 사과나무 | 바나나북
(발행 : 2020/09/07)

보기만 해도 구리구리해 보이는 누런 똥 위에 앉은 파리가 커다란 목소리로 외칩니다. “내 똥이라고!”💩

강아지가 정원 구석에 싼 작은 똥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따끈따끈 거대한 똥 덩어리를 발견한 파리 로라는 너무 행복했어요. 똥 덩어리 꼭대기에 깃발을 꽂으며 자기 소유임을 사방에 알렸지요.

내 똥이라고!

하지만 곧이어 피오나가 로라의 똥을 탐내면서 둘 사이 피 튀기는 똥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해가 질 때까지 전쟁을 하던 둘은 밤이 되자 똥 덩어리 한가운데 하얀 선을 긋고 아침까지 휴전을 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서로를 믿지 못해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는 바람에 다음 날 너무 피곤했어요.

‘오늘은 못 싸울 거 같아. 너무 지쳤어.’
로라는 생각했어요.

‘어? 이상하다. 어제는 몰랐는데 똥 반쪽도 꽤 크네.’
피오나는 생각했어요.

파김치가 되고 나서야 똥 반쪽도 꽤 크다는 사실을 가까스로 알아차리게 된 로라와 피오나, 두 똥파리가 뭔가 큰 깨달음을 얻는 순간 커다란 위험이 닥쳐왔으니… 이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내 똥이라고!

위기 앞에 한 마음이 된다고 했던가요. 로라와 피오나의 전쟁은 그렇게 끝이 났어요. 둘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다음에 커다란 똥을 발견하면 이렇게 말하자고 다짐했어요.

“이 똥은 우리 거야!”

똥을 두고 서로를 믿지 못해 잠도 못 자고 싸우던 두 파리가 손을 맞잡은 장면은 코믹하면서 또 한편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똥과 파리로 풀었을 뿐 너무나 인간 세계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백년도 못 사는 인생, 그 짧은 인생을 살다가면서도 내것 네것을 따지느라 즐기지 못하니. 괜스레 남의 것을 탐하느라 혹은 나만의 것이라 욕심을 부리다 오히려 상처를 입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똥을 두고 목숨 내놓고 싸우고 있는 똥파리의 모습이 혹시나 내 모습은 아닌지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책 “내 똥이라고!”, 두 파리의 마음을 하나로 이은 사건의 전말은 그림책에서 찾아 보세요.


※ 함께 읽어 보세요 :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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