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곳, 내가 자라고 배우며 성장한 곳, 소중한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가족으로 살아가는 곳, 나의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웃고 울던 곳, 부모님을 떠나보냈고 머지않아 내 아이도 떠나보낼 곳, 나의 생을 마무리할 곳… 물리적인 공간은 살아오며 계속 바뀌었지만 내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곳이 바로 집입니다.

여러분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재산? 가족? 안정과 휴식?

작은 진흙집 하나를 통해 관습의 틀을 벗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지혜를 이야기하는 “질퍽질퍽 진흙집”, 인류와 함께 발전해 온 집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인류와 함께 똑똑해진 집 이야기”, 담긴 이야기는 각기 다르지만 집이라는 주제를 다룬 이 두 권의 그림책이 나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질퍽질퍽 진흙집

질퍽질퍽 진흙집

(원제: Stick in the Mud)
진 케첨 | 그림 프레드 케첨 | 옮김 김선양 | 마리앤미
(2021/12/20)

“질퍽질퍽 진흙집”은 초판이 1953년에 나온 오래된 그림책입니다. 원제 ‘stick in the mud’가 ‘새로운 것을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람, 고루해 빠진 사람’이란 뜻이고, 영어 부제 ‘A tale of a village, a custom and a little boy’에도 ‘custom’이란 단어가 들어간 걸 보면 변화를 주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아닐까 싶습니다.

질퍽질퍽 진흙집

옛날 어느 작은 마을에 땅 위에 진흙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마을은 항상 더웠는데 진흙집은 시원했고 지붕을 덮은 나뭇잎 덕분에 그늘도 생겨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진흙집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비가 오면 바닥이 질퍽해져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것 빼고는 시원하게 지낼 수 있으니 이 마을 사람들은 대대손손 진흙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질퍽질퍽 진흙집

마을 사람 어느 누구도 비가 오면 질퍽해지는 걸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았죠. 그냥 늘 그래왔으니까, 비 오는 날 질퍽해지는 것 말고는 장점이 더 많으니까, 비가 오면 흙이 질퍽해지는 건 당연한 것이고 그거야 좀 참으면 되니까… 이러면서 말이죠.

그러던 차에 질퍽한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 아이가 등장하게 됩니다. 아이는 늘 어떻게 하면 비 오는 날에도 질퍽하지 않은 집에서 보송보송하게 지낼 수 있을까 궁리하고 또 궁리합니다. 마침내 묘안을 생각해낸 아이는 엄마 아빠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랑했지만 반응은 시큰둥…

다행스럽게도 할아버지가 지나가다 아이가 지은 작은 집을 보시고는 집을 왜 기둥 위에 지었는지, 그 기둥이 무슨 역할을 하는 건지 아이에게 묻습니다. 아이의 설명을 들은 할아버지는 다음 날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아이가 만든 집을 보여줍니다. 집을 이렇게 지으면 비가 와도 질퍽하지 않을 거라고 설명해주었지만 마을 사람들 반응은 역시나 시큰둥…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데리고 아이의 아이디어대로 새로운 집을 짓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기둥 위에 집을 짓다니 우스꽝스럽다며 한심해하죠.

질퍽질퍽 진흙집

그 후로
한 집, 두 집, 세 집, 네 집…
너도나도 기둥 위에 집을 짓기 시작했어요.

이야기의 결말은 뭐 안 봐도 뻔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비 한 번 쏟아져 주면 뭐… 😄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이 그림책을 본다면 다들 이럴 겁니다. 마을 사람들 참 답답하고 한심하다고 말이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여러분이 아이의 새로운 시각으로, 또는 할아버지의 현명한 시각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나는 아이처럼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의지로 살아왔는지, 할아버지처럼 누군가의 새로운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는지, 타성에 젖어 작은 변화조차 귀찮아 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한 번 되돌아본다면… 답은 과연 어느 쪽일까요?

단순하게 생긴 진흙집 하나로 관성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변화를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를 주는 그림책 “질퍽질퍽 진흙집”입니다.


질퍽질퍽 진흙집

인류와 함께 똑똑해진 집 이야기

(원제: Histoire de habiter)
갈리아 타피에로, 세실 빌랭 | 그림 마갈리 뒬랭 | 옮김 이정주 | 개암나무
(2021/08/30)

“인류와 함께 똑똑해진 집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지혜롭게 환경에 적응하며 발전해 온 인류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집의 역사를 담은 그림책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집이 발전해 온 역사, 즉 과거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여지껏 적응하고 발전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새로운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려면 지금보다 더 똑똑해져야 한다며 집의 미래를 말하는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매력은 인간의 거주 문화의 발전을 다룬 그 다음 이야기들에 있습니다. 주거 불평등에 대한 문제, 자연 환경뿐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가 가져오는 새로운 주거 문화 등을 두루두루 다루고 있습니다. 짤막한 분량들이지만 다양한 이슈들을 언급하면서 우리 앞에 산적해 있는 환경과 생존에 대한 절박한 문제들을 보여줍니다.

인류와 함께 똑똑해진 집 이야기

우리가 사는 집은 우리에게 얘기해요. 앞으로는 늘어나는 인구뿐 아니라 우리가 생활하는 환경을 생각해 집을 지어야 한다고요. (중략)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다른 행성에 가서 살지도 몰라요… 아니면 깊은 숲속에 숨겨진 조용한 오두막에 가서 살지도 모르죠!

지금껏 인류는 자연적, 지리적,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며 주거 문화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하지만 심각한 인구 포화와 급격히 변화하며 인류를 압박해오는 기후 문제에 직면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적응하고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작가들이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결국 이것 아닌가 싶습니다. 정답은 작가들 역시 알 수 없습니다. 여지껏 잘 적응해 온 인류의 지혜와 그런 우리들을 잘 품어준 지구의 현명함을 믿는 수밖에요…

집이 발전해 온 과거를 들여다보고 앞으로 발전해 나갈 미래를 내다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의미,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의미, 자연과 공존하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해주는 그림책 “인류와 함께 똑똑해진 집 이야기”입니다.


같이 읽어 보세요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0 0 votes
Article Rating
알림
알림 설정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모든 댓글 보기
0
이 글 어땠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