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 : 2016/03/01
■ 마지막 업데이트 : 2017/04/08


제가 그림책을 처음 찾아보기 시작했던 시기는 딸아이의 돌이 막 지났을 무렵인 1999년 말입니다. 그 때부터 한 권 한 권 그림책을 골라 읽으며 딸이 어느새 쑤욱 자란 것처럼 세월도 이렇게나 많이 흘러버렸네요.^^ 오늘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케케묵은 오래된 그림책 이야기를 들고 왔습니다.

우리들의 첫 그림책 : “The Very Hungry Caterpillar”

“The Very Hungry Caterpillar : 배고픈 애벌레”는 지금은 고등학생인 딸내미의 첫 그림책입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책들
The Very Hungry Caterpillar / Eric Carle

특히나 이 음식이 나오는 페이지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이 페이지에서 한 참을 머무르며 냠냠냠 거리다 엄마도 한 입 주고 저도 오물오물 남냠냠 맛있게 받아먹는 시늉을 하곤 했어요. 딸내미가 너무나 열심히 본 탓에 이렇게 손 때가 덕지덕지 묻어버렸네요. 지금 돌아보니  고사리 손으로 책장을 넘기던 시절이 생각나 웃음도 나고 뭉클하기도 합니다.

“The Very Hungry Caterpillar”는 묘한 인연으로 만나게 된 그림책이에요.

초중등 보습학원을 운영하던 시절, 수업 대기 시간 동안 초등 저학년 아이들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시간을 만든 적이 있어요. 아이들이 읽어주는 책을 이렇게나 좋아하는구나를 알게 해준 하루 15분 짜리 동화책 읽어주기 시간, 기대 이상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 시간에 한 아이가 읽어달라며 집에서 그림책 한 권을 들고 온 적이 있었어요. 그 때 만난 책이 바로 전집에 끼어있던 에릭칼의 “배고픈 애벌레”였답니다. ‘어린이 책은 어른들이 읽는 책보다 문장도 단순하고 쉬운책’이라고만 생각했던 기존의 어린이 책에 대한 제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책이었죠.

훗날 제 아이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고를 때에도 제일 먼저 떠오른 책이 “배고픈 애벌레”였습니다. 하지만 전집에 들어간 책은 단행본으로 구매할 수 없어서 이 책을 영어 원서로 구해 볼 수 밖에 없었어요. 우리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려고 찾기 시작했던 1999년 말에서 2000년대 초반에는 단행본 그림책보다는 유명 그림책들 사이에 수준 이하의 그림책을 끼워 파는 그림책 전집류, 판권을 제대로 사지 않고 유명 그림책들을 카피해서 찍어내는 해적판 전집류들이 훨씬 구하기 쉬운 환경이었거든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책들
딸아이와 나의 첫 그림책 에릭칼의 “The Very Hungry Caterpillar”와 “The Very Busy Spider”

전집에 묶인 에릭칼의 책을 살 수 없었기에 본의 아니게 딸아이의 첫 그림책으로 영어 그림책을 사주게 되었지만 아직 큰 편견이 없었던지 말귀를 잘 못 알아 들었던지(^^) 아이는 거부감 없이 이 책을 좋아했어요(워낙에 색감이 화려하니까요). 두 번째 그림책을 고르기까지 한참동안 집에 그림책이 달랑 두 권 뿐이었으니 얼마나 마르고 닳도록 보았는지 모릅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책들
어린 시절부터 한 권 한 권 모아 온 아이의 영어 그림책들 중 일부

이렇게 어렵게 첫 그림책을 구입 한 후로 우리의 취향이 반영되지 않은 전집 묶음을 아이에게 덜컥덜컥 세트로 안겨주지 않겠다 생각했고 그렇다 보니 그림책을 접하기 위해 쉬는 날이면 아이와 직접 도서관을 다니고 주말마다 서점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마음에 드는 책이 전집에 묶여 낱권 구입이 불가능 하거나 아직 번역이 되어 나오지 않은 경우에는 원서로 구입해 봤어요. 그렇게 딸아이는 그림책을 통해 학습지나 영어 학원의 도움 없이 한글과 영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고 책을 고른 덕분에 아이가 좋아하는 책이 제가 좋아하는 책이 될 정도로 책을 고르는 안목도 함께 기를 수 있었습니다.

이 책들 중에는 나중에 전집 계약이 풀렸는지 단행본으로 출판된 것들도 꽤 있더군요(전집 계약이 풀렸다기보다는 다른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고 들여온 거겠죠). 아이에게 사주고 싶은데 전집에 묶여있어 아쉬워하며 영어 그림책으로 구해야 했던 책들이 서점에 단행본으로 놓인 걸 보면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갔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묘한 기분이 들곤합니다.

직접 고른 첫 그림책 :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책들
야, 우리 가차에서 내려! / 존 버닝햄

“The Very Hungry Caterpillar”“The Very Busy Spider”가 저희가 아이에게 처음 사준 그림책이었다면 존 버닝햄의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는 딸이 서점나들이를 통해 스스로 고른 첫 번째 그림책입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책들

한참 기차를 좋아했던 시절이라 기차 그림이 담긴 이 그림책을 아주 좋아했어요. 이 그림책이 담고 있는 심오한 의미는 훗날 초등학생이 되어서야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저 어린시절에는 기차랑 온갖 동물들이 어울려 노는 것이 너무 좋았다네요. ^^

이 때부터는 서점에서 책을 읽고나면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은 꼭 구입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덜컥덜컥 세트로 사주지 않되 마음에 드는 단행본 사는 비용만큼은 아끼지 말자고 생각했었죠.

가장 좋아한 그림책 : “고릴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책들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는 지금까지도 자기가 좋아하는 책만 꽂아두는 책꽂이 칸에 따로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딸이 가장 좋아했던 그림책입니다. 아마 제 블로그 ‘겨레한가온빛’의 여기 저기를 뒤지다보면 이 책을 꼭 끌어안고 잠이 든 아이 사진을 찾을 수 있을거예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책들

너무 많이 읽고 어디든 들고 다니는 바람에 겉표지와 속지가 분리되기도 하고 겉장이 아예 똑떨어져 나가 테이프로 여러번 대수술을 거치기도 했어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책들

책에 낙서를 하거나 찢는 일은 없었는데 고릴라는 너무 여러번 읽어 이렇게 표지와 본판이 쩍 갈라지기도 했어요. 중간에 한 권 다시 사줄까 하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말이죠.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책들

딸내미가 “고릴라” 에서 가장 좋아했던 장면이예요. 이 장면을 가만 들여다 보면 왠지 마음이 찡해진다면서 하염없이 들여다 보곤 했죠.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책들

우리집 부엌 식탁 옆에도 이 장면이 액자로 걸려있어요. 14살 때 앤서니 브라운 원화전을 보고나서 자기 용돈으로 사 온 “고릴라”포스터 그림이예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책들
딸아이가 자기 생애 최초의 팬질이었다 말하는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들

어린시절부터 한 권씩 모아온  앤서니 브라운의 책들 중 일부입니다. 작가 이름이 누군지도 잘 몰랐던 시절 이상하게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들에 끌렸었던 걸 보면 순수한 꼬꼬마 시절 자신의 인생 최초 진정성 넘치는 팬질이었다나요. 그 말에 엄마는 웃습니다.  🙂

그림책은 사랑을 싣고…

딸아이 때문에 시작했지만 누가 더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가족 모두 즐거웠고 소통의 중요한 매개체 중 하나이기까지 했던 우리 가족의 그림책 사랑은 아이가 이렇게 다 자란 후에도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 거리와 추억을 남겨주었어요.

아이가 자라는 동안 전집으로 읽지 않으면 아이 연령대에 꼭 읽고 지나가야 할 책 목록에 구멍이 뻥뻥 뚫리게 된다, 일관성이나 일정한 주제 없이 이 책 저 책 사서 보면 오히려 아이가 산만해 지고 전문성 없는 엄마 취향 위주로 책을 고르게 되는 위험성까지 떠안고 아이는 결국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초등 고학년 되고 중학생 되면 시간이 없기 때문에 주제와 흐름이 명확한 전집물을 구입해 많은 양의 책을 읽어놔야지만 입시에 닥쳐 시간에 쫓길 때 도움이 된다는 식의 여러 이야기를 들었지만 흔들림 없이 우리가 직접 고른 책들로 책꽂이는 조금씩 채워졌고 그 한 권 한 권에는 가족 모두의 소소한 추억이 담겨있습니다.

딸아이는 이제 고3이 되어 바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지금도 무거운 책가방 속에는 짬짬이 읽을 책 한 권이 꼭 들어있어요. 책 읽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라는 아이는 자신의 책 읽기의 기본 토양은 어린시절 그림책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해요. 넘치고 과하지 않는 적당한 정도의 양을 스스로 골라 볼 수 있게 해준 엄마 아빠의 배려 덕분이라는 말에 괜시리 으쓱해 할 때도 있죠.

학원으로 내몰리지 않고도, 자기 나이를 몇 년씩 앞서가는 부담스러운 선행 학습에 지치지 않고도, 아이 취향이 고려되지 않는 뭉텅이 전집물 없이도 내 아이 취향과 성장에 맞춰 함께 자라온 우리집 책꽂이에는 책 뿐만 아니라 낡고 묵은 오랜 가족 이야기도 함께 숨어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그림책 Best 50

※ 순서는 ‘가나다’ 순이이며 평점이나 순위와 무관합니다.
※ 목록 중 빈 칸은 시공주니어에서 출간된 그림책을 2017년 4월 8일 삭제하여 생긴 것입니다.(삭제 근거 : 앞으로 시공주니어 그림책은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1. 강아지똥
  2. 개미가 날아올랐어
  3. 구름 공항
  4.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
  5. 그래도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
  6.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
  7. 내 사랑 뿌뿌
  8.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9. 눈사람 아저씨
  10. 눈 오는 날
  11.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
  12. 똥벼락
  13. 둥!
  14. 돼지책
  15. 마녀 위니
  16. 사과가 쿵!
  17. 소금이 온다
  18. 손바닥 동물원
  19.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20. 솔이의 추석 이야기
  21.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22. 씨앗은 무엇이 되고 싶을까?
  23. 아빠가 우주를 보여준 날
  24. 아씨방 일곱 동무
  25. 악어도 깜짝, 치과 의사도 깜짝!
  26. 안 돼, 데이빗!
  27. 알록달록 물고기
  28. 앨피가 일등이에요
  29. 옛날에 오리 한 마리가 살았는데
  30. 오른발, 왼발
  31. 요셉의 작고 낡은 오버코트가
  32. 우리 몸의 구멍
  33. 우리 할아버지
  34. 으뜸 헤엄이
  35. 이슬이의 첫 심부름
  36. 이야기 이야기
  37. 작은 집 이야기
  38. 종이 봉지 공주
  39. 지각대장 존
  40. 책 읽기 좋아하는 할머니
  41. 코를 킁킁
  42. 탁탁 톡톡 음매 젖소가 편지를 쓴대요
  43. 팥죽 할멈과 호랑이
  44. 화물 열차